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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41>民權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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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41>民權法

입력
2003.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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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7월2일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이 민권법에 서명했다. 이로써 피부빛깔, 인종, 종교 따위를 이유로 한 공공 장소에서의 차별 관행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이 법은 그 때까지 허울뿐이었던 흑인들의 참정권을 현실화했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그런 만큼 이 법안에 대한 보수적 정치인들의 반발도 컸다. 남부 출신 상원 의원들은 무려 75일간의 필리버스터링(긴 연설 따위를 통한 의사진행 방해)으로 이 법안의 무산을 꾀했고, 상원은 할 수 없이 역사상 처음으로 강제적 토론 종결(cloture)을 결정해야 했다. 법안은 찬성 73, 반대 27로 통과되었다. 이 법안은 당초 존 케네디 대통령 시절의 법무부 장관 로버트 케네디가 마련했으나 상원에서의 필리버스터링으로 무산된 바 있다.행동 없이는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사는 또렷이 보여주었다. 운동가들은 자유주의적 법률가들의 도움으로 법적 투쟁을 줄기차게 펼쳤지만, 변화의 직접적 동력이 된 것은 늘 거리의 행동이었다.

1955년 12월 몽고메리의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시내버스에서의 흑백 분리를 규정한 시법(市法)을 어기고 백인 자리에 앉았다가 체포된 데서 발단한 전국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와 몽고메리 개선협회(MIA)의 버스 승차 거부 운동, 1960년 학생비폭력협력위원회(SNCC)가 주도한 연좌농성, 1961년 제임스 파머가 남부 전역의 버스 터미널 식당과 대합실·화장실에서 이뤄지고 있는 흑백 분리 실태를 파악하고자 조직한 자유여행단,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로 절정을 이룬 1963년의 워싱턴 행진 같은 것들이 이런 거리 투쟁의 예다. 이런 거리 투쟁은 민간과 정부에 포진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력적 대응 속에서 실천되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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