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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 대통령의 사람들]<18>게이트의 사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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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 대통령의 사람들]<18>게이트의 사슬 ①

입력
2003.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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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몇 시간이 됐다고…. 벌써 내보내면 어떡합니까. 옷로비 사건을 아시지 않습니까. 조사할 게 없더라도 모양새를 위해 최소한 새벽 2시까지는 잡아둬야 합니다."2001년 9월20일 밤 9시께 서슬 퍼런 대검 중앙수사부가 있는 서초동 대검청사 7층. 명동성 수사기획관실에서 문 밖까지 새 나올 정도의 자못 큰 소리가 터져나왔다. 같은 시각 11층의 중수부 조사실에서는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씨가 G& G그룹 회장 이용호씨에게 6,600여만원을 받은 경위를 조사 받은 뒤 귀가 채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대검에 근무했던 한 검사의 전언. "오후 4시30분께 소환된 승환씨를 불과 5시간 가량 조사했을까? 수사팀이 '귀가시킬테니 기자실에 통보하라'고 대검 공보관에게 알리자 공보관이 수사기획관실에 허겁지겁 뛰어올라간 모양이더라. 공보관은 옷로비 사건 때 김태정 법무장관의 부인 연정희 여사를 사진기자들 몰래 귀가시켰다가 의혹이 커지고 특검까지 초래한 상황을 설명하고는 승환씨의 귀가를 늦추도록 설득한 것 같다. 수사팀은 결국 승환씨를 조사실에서 그냥 대기시켰다가 자정이 조금 넘어 귀가시켰다고 한다."

당시는 검찰 고위간부들의 이용호씨 비호 의혹과 이씨의 정·관계 로비 의혹이 증폭되던 때였다. 당연히 승환씨가 이씨의 구명을 위해 형인 신 총장과 검찰 간부들에게 구명 로비를 했는지에 촉각이 모아졌고, 그래서 대검 중수부의 승환씨 처리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승환씨가 귀가한 몇 시간 뒤, 검찰은 "승환씨가 개인적으로 돈을 받았고, 검찰에 로비를 하거나 신 총장의 이름을 팔고 다닌 사실도 없다"고 면죄부를 줬다.

그러나 이 일은 검찰수사에 대해 피어오르던 국민적 불신에 불을 당겼다. 결국 '이용호 게이트 특검'으로 이어져 검찰의 부실수사는 낱낱히 파헤쳐졌고 DJ정부의 '호남 검찰'이 몰락하는 시발점이 됐다.

승환씨가 소환되기 한달 전쯤인 8월26일. 김준호 중수부 3과장은 신 총장의 호출을 받는다. "이용호를 잡아들이시오." 중수부의 업무는 총장이 하명하는 사건의 수사이지만 총장이 특정인을 거명해 잡아들일 것을 지시하는 일은 드물다. 김 과장은 검사와 수사관을 소집, 신 총장의 지시를 전달하고 "사건에 관해 한마디도 외부에 유출하지 말라"며 각별한 보안을 당부했다. 당시 중수부는 공적자금비리수사를 진행하고 있어 '이용호'라는 이름이 내사 리스트에 올라있었지만 '중수부가 손 볼 만한 거물'은 아니었다.

김 과장은 이씨에 대한 범죄혐의를 살피던 중 이씨가 1년여전인 2000년 5월 서울지검에 긴급체포됐다가 하루 만에 풀려나고, 두달 뒤 불입건 결정이 내려진 사실을 확인한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김 과장의 회고. "신 총장에게 '서울지검의 수사 라인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고 보고했더니 '어쩔 수 있소. 한번 손 댔으니 계속 하시오'라는 답변이었다. 자칫 화가 미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창종 중수부장도 YS정부 초 서울지검 강력부장으로 있을 때 이건개 당시 대전고검장 등 검찰 고위 간부 등이 구속된 슬롯머신 수사의 악몽이 떠올랐다고 한다.

이들의 직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DJ의 둘째 아들 김홍업씨와 처조카 이형택 예금보험공사 전무, DJ의 영원한 집사 이수동 아태재단 이사 등 DJ정권의 '살아있는 권력'이 줄줄이 구속되고, 신 총장 등 검찰 고위간부들까지 기소되는 일파만파의 결과까지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로부터 며칠 뒤 검찰 수사관들은 이씨가 나이트클럽에 있다는 첩보를 입수, 재빨리 따라붙은 끝에 호텔에 투숙한 그를 체포한다. 이씨의 혐의는 두 가지. 부실기업의 기업자금 및 일반인 투자금 400억여원을 빼돌리고 보물발굴 사업 추진 등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불법 주식거래를 한 혐의. 이 때만 해도 기자들은 중수부가 기업구조조정 비리에 대한 일제 수사를 하는 정도로 알았다.

그러나 서울지검 특수부의 '긴급체포 및 불입건' 사실이 본보(2001년 9월11일 31면)에 첫 보도되면서 사건의 성격은 180도 달라졌다. 같은 사안을 놓고 서울지검은 면죄부를 줬으니 로비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했고, 이씨에 대한 검찰 고위간부들의 비호 의혹이 전면에 불거졌다. DJ정권의 내리막을 급가속시킨 연쇄 게이트 사건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중수부는 당시 수사에서 이형택씨가 보물 발굴사업에 개입한 정황이 있음에도 비공개로 소환조사한 뒤 하루 만에 무혐의 처리했다. 또 이용호씨에게서 나온 이수동씨 관련 진술도 소홀히 다루었다. 중수부 수사치곤 맥 풀린 것이었다. 이어진 특검 수사에서 모두 뒤집히고 만 것은 자명한 이치.

또다시 김준호 과장의 회고. "대검 수사가 잘못된 건 거기까지 밖에 (진술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사 능력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안나오는데 어떻게 하겠나. 이수동에게 돈을 전달한 사람도 특검에서 진술을 바꿨다."

하지만 당시 대검에 근무했던 한 검사는 이렇게 반박한다. "부실수사는 수사팀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다. 우선 승환씨를 배려한 것이 실수다. 계좌추적만 했어도 후일 수모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눈치보기 수사'라기보다는 수사팀 구성에 문제가 있었다. 특별수사 검사의 스타일은 A혐의로 데려와 안나오면 B, C까지 샅샅이 뒤지는 타입과 당초의 A혐의에 국한해 매끄럽게 처리하는 타입이 있다. 수사팀은 두 스타일이 적절히 섞여야 탈이 없는데 당시 수사팀은 모두 전형적인 후자였다."

명동성 수사기획관의 해명을 보면 위의 설명이 딱 들어맞는 듯 하다. "계좌추적을 할 이유가 없었다. 승환씨가 이용호한테 돈 받은 사실이 드러난 상태여서 대가성 여부만 따지면 됐는데, 우리는 승환씨 개인을 위한 돈으로 봤다. 그리고 이용호 사건 수사를 한 것이지 특검처럼 승환씨의 감세 청탁 비리 등 다른 사안을 수사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이는 신 총장과 승환씨의 해명만 믿고 계좌추적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동생을 풀어준 뒤 신 총장이 "특검을 해봐야 나올 게 없다"고 장담한 것은 결정적 패착이었다. DJ가 특검 수용 여부를 결정(9월24일)하기 전 신 총장을 조용히 청와대로 불렀을 때도 신 총장은 자신있게 특검 수용론을 폈다. 결국 검찰의 이용호 게이트 부실수사는 특검을 거쳐 다시 중수부로 되돌아오면서 두 단계 업그레이드 된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와 '김홍업씨 사건'으로 이어진 뒤 부메랑이 돼 검찰 고위간부들의 수사기밀누설 문제로 비화하는 것이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2000년 5월 서울지검 특수2부가 이용호씨를 긴급체포한지 하루 만에 석방한 것은 과연 '성공한 로비'의 결과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성공한 로비'로 보였지만 '실패한 수사'쪽에 가깝다. 그런데도 '성공한 로비'처럼 비친 데는 당시 수사라인이 호남 출신 일색이었고 이들과 이씨의 얽히고 설킨 인연이 문제가 됐다.

당시 서울지검장은 이리 남성고 출신의 임휘윤씨, 3차장은 광주일고 출신의 임양운씨, 특수2부장은 전주고 출신의 이덕선씨. 광주상고를 나온 이용호씨의 로비 타깃이 주로 호남 출신 정·관계 인사라는 점이 수사과정에서 드러나면서 '수사라인도 한통속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게다가 법무장관을 지낸 광주고 출신의 김태정 변호사가 1억원을 받고 임 검사장에게 전화변론을 한 일까지 겹쳤다.

김 변호사는 법무장관이던 1999년 6월 대검 강력부장이던 임 검사장을 서울지검장에 발탁한 장본인. 임씨는 당시 "장관님이 내게 너무 큰 떡을 주셨다"고 주변에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씨 배후의 '보이지 않은 손'으로 두 사람을 의심하는 이가 많았다. 임 검사장은 이씨를 통해 5촌 조카를 취직시켰다. 또 임양운 3차장도 고교동문의 소개로 이씨를 알고 있었고, 이덕선 부장도 이씨가 관련된 진정사건에 개입했다.

그러나 서울지검의 수사라인에 대한 특별감찰본부와 특검 모두 '성공한 로비'를 부인했다. 특감본부는 "일부 간부의 부적절한 행동과 직무태만은 있었지만 '의도적 봐주기'는 없었다"고 결론 냈고, 특검도 임 검사장 등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리했다.

특별감찰에 참여했던 한 검사의 설명. "임 검사장이 봐줄 생각이었다면 애초 이씨의 긴급체포와 압수수색을 승인하지 않았다. 긴급체포한 상황에서 전화변론 때문에 석방하는 것도 수사관행상 생각키 어렵다. 수사검사가 석방 의견을 냈고, 이후 보완수사에서도 혐의 입증에 자신을 갖지 못해 불입건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생각한다." 임휘윤 변호사도 "5촌 조카의 취직과 김 변호사의 전화변론이 사건을 에스컬레이터시켰을 뿐"이라며 "본질은 특수부가 잡아넣으려다 실패한 수사"라고 말했다.

이용호씨의 측근 L씨의 얘기. "용호는 처음에는 알고 지내는 검사들이 있었지만 로비할 만한 관계는 아니었다. 서울지검 조사 이후에야 기를 쓰고 로비를 해 어느날 갑자기 '검찰 마당발'이 됐다."

/이진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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