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가 미국과의 한판 전쟁을 위해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최근호(6월30일자)에서 이 같은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여기서 전쟁이란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이었던 코카서스 지역 및 중앙아시아의 8국을 놓고 벌이는 경제 전쟁을 의미한다. 현재 양국간에는 이데올로기가 중심이 됐던 20세기의 냉전과 달리 부존 자원과 군사·전략적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경제 냉전의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공동 경영에서 전쟁으로
비즈니스위크는 러시아가 코카서스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미국과의 공동경영에서 대결 전략으로 선회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대 테러전을 지지하면서 미국이 이 지역에 진출하는 것을 눈감아 주었다. 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과 미국 등 서방 석유 메이저들의 진출 확대, 각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 지원을 묵인했다. 현재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그루지야 등에 약 3,000명의 미군이 주둔 중이고, 앞으로 1만2,000명까지 증파될 예정이다.
러시아는 그 대가로 나토 및 유럽연합(EU)과의 협력 강화와 대 체첸전에 대한 미국의 협조를 이끌어냈다. 경제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의 자본을 들여와 석유 산업을 성장시켜 자원 강국으로 부상한 뒤 지역 산유국들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같은 카르텔을 만들어 국제 에너지 질서를 주도한다"는 장기적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앞마당 되찾겠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가 앞마당 수복 작전을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는 8월부터 키르기스스탄의 칸트 공군기지를 중심으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과 합동으로 테러 및 마약 소탕 작전을 시작한다. 칸트 기지는 2001년 말 건설된 키르기스스탄 간치의 미 공군기지와 겨우 30㎞ 떨어져 있어 미국의 신경을 건드릴 수 밖에 없다.
러시아는 또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 외곽에 중무장 혼성 사단인 제 201 기계화 사단을 배치할 새 기지를 건설 중이다. 경제 원조를 좇아 완전히 미국 편으로 돌아선 우즈베키스탄 내 카르시 미군 공군 기지를 견제하기 위한 방편이다.
또 흑해 연안의 소치와 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을 잇는 철도 복구 작업도 한창이다. 이는 코카서스 3국(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중 유일하게 러시아의 우방으로 남은 아르메니아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최근 부채 탕감 등을 조건으로 아르메니아의 가스 시설과 발전소들을 장악했고, 미국으로부터 부정 선거 비난을 받고 있는 로베르트 코차리안 대통령을 옹호하고 있다.
러시아의 정치 분석가 비탈리 트레티야코프는 "러시아는 미국을 떠나게 할 수 없는 이상, 대등한 세력으로서의 경쟁을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석유, 테러전, 자존심
이 같은 정책 변화의 가장 중요한 배경은 세계 3대 유전지대인 카스피해의 석유와 그와 관련된 막대한 수송 이익이다. 카스피해에는 최대 2,000억 배럴의 석유 및 600조㎗의 천연가스가 묻혀 있지만 아직까지 개발이 미미한 상태이다. 러시아는 미국이 카스피해와 중앙아 지역의 자원을 인도양으로 보내는 길목인 아프간에 이어 세계 제2위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이라크를 장악했고,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 아제르바이잔과 터키를 직접 연결하는 송유관이 2004년 완공된다는 사실에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또 최근 러시아의 반대를 무릅쓰고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을 연결하는 해저 송유관을 추진하는 미국을 더 이상 '에너지 동반자'로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러시아는 또 체첸 반군을 지원하는 코카서스 지역의 테러 네트워크를 차단하고, 러시아를 최대 시장으로 삼고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마약 거래를 직접 뿌리 뽑으려고 하고 있다. 이라크전을 거치며 미국에 대한 불신이 커졌기 때문이다. 푸틴이 12월 총선과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강경파의 요구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이다. 푸쉬킨이 사랑한 코카서스 앞바다를 과거의 적에게 내줄 수 없다는 국가적 자존심도 작용했다.
미국, "어림없는 소리"
미국의 역 반격도 만만치 않다. 러시아의 체첸 반군 소탕작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그루지야를 보호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파견하고, 아르메니아에 400만 달러 규모의 군사지원을 제의하는 한편, 6월엔 아르메니아에서 나토 군사 훈련을 감행했다. 아제르바이잔과는 미군 기지 건설을 협상 중이고, 아직까지는 중립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에 대한 구애 작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카스피해에서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간,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양의 해상수송로로 통하는 송유관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서이다.
이 지역 국가들은 경제 개발과 군 현대화, 국제사회 진출 등을 위해 양쪽을 적절히 이용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비즈니스위크는 이 때문에 경제 규모가 3,500억 달러인 러시아가 수조원대인 미국을 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셰르츠 사르키스얀 아르메니아 국방장관은 "미국은 러시아에는 없는 돈을 가졌다. 러시아의 강점은 역사와 앞마당을 되찾으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 카스피해 주변 쟁점은
1991년 구 소련의 붕괴 이후 카스피해 지역은 주변 국가와 열강의 이해의 각축장이 됐다. 카스피해가 품고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엄청난 자원과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주변국은 물론 미국 등 서방 강대국들을 끌어 들이는 요인이 됐다. 중동, 시베리아와 함께 세계 3대 석유·가스 매장 지역으로 꼽히는 카스피해의 석유 매장량은 2,000억 배럴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 매장량 2,600억 배럴과 맞먹는 수준이다.
구 소련 붕괴 이전까지 카스피해는 연안국인 구 소련과 이란이 조약에 의해 관장해왔다. 그러나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이 독립하면서 연안국이 5개로 늘었다. 이들 5개국은 최근까지 카스피해 자원 관할권을 배분하기 위한 협의를 계속해 왔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등 북부 연안 3국은 해안선 길이에 따라 카스피해 유전개발권을 분할하자는 안을 내놓고 있으나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은 5개국의 균등 분할을 요구하고 있다.
북부 연안 3국은 양자 협정 및 3자 회합을 통해 '해안선 비례 분할' 원칙에 합의,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을 압박하고 있다. 해안선 길이에 따라 분할할 경우 카자흐스탄 27%, 러시아 19%, 아제르바이잔 18%를 차지하게 되며 이란은 13%에 불과해 균등 분할할 경우보다 몫이 크게 줄어든다. 최근에는 투르크메니스탄도 3국의 제안에 동조할 움직임을 보여 이란이 몰리는 처지이다.
또 하나의 현안은 카스피해에서 지중해로 연결되는 송유관 건설이다.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그루지야의 트빌리시를 거쳐 터키의 제이한에 이르는 1,750㎞의 이 송유관은 8년 간의 논란 끝에 지난해 착공, 2005년 가동할 예정이다. 서방국가들은 러시아 영토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카스피해 원유를 공급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해 왔다. 이 지역에서 강자로 굴림하고 있는 러시아와 이란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크게 작용했다.
러시아는 이 송유관이 카스피해 북부에서 자국 영토를 통해 흑해 노보로시스크항으로 이어지는 송유관을 대체할 것을 우려해 불만을 표시해왔으나 착공을 막지는 못했다. 러시아는 그러나 카스피해 해저를 통해 이 송유관을 카자흐스탄까지 연장하려는 계획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환경문제를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자국을 배제한 데 대한 반감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김상철기자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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