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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패트롤]경북 성주 티켓다방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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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패트롤]경북 성주 티켓다방 몸살

입력
2003.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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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의 7월은 샛노란 참외가 익어가는 계절. 하얀 비닐하우스의 물결이 곱게 펼쳐진 들녘엔 금과(金果) 대신 꺼내기 민망한 핑크 빛 소문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있다. 5만 명도 채 안 되는 고을에 다방이 120여 곳. 대부분 커피 배달을 빌미로 윤락을 하는 티켓다방이다. 티켓다방이 농어촌 곳곳에 똬리를 튼 지 어느새 10년. 올해도 참외 한철 특수를 맞은 성주지만 씁쓸한 커피 향이 달콤한 참외 내음을 압도한다. 한 고교생의 글에서 비롯된 티켓 시비에 "왜 하필 성주냐"며 핏대를 세우는 남정네의 삿대질부터 "티켓에 홀려 패가망신했다"는 아낙의 푸념까지 티켓다방을 둘러싼 성주 사람들의 설왕설래는 무르익다 못해 곪아터질 지경이다.# 성주 읍내(밤)-공공연한 티켓 거래

땅거미가 땀으로 눅눅해진 몸에 스며들 무렵. 성주 읍내 곳곳엔 보온병 보자기를 든 아가씨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칙칙한 다방이라는 상호 대신 무슨 무슨 휴게실로 간판을 모조리 바꿔달았다지만 업소 내부는 밖에선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음침하다.

"○○모텔 302호 커피 한잔이요. 티켓 끊나요?" 수화기 너머 여성이 피식 웃는다. "3잔이 기본, 배달만 해요." 10분도 채 안돼 화장을 진하게 한 20대 초반 여성이 나타났다.

―더 젊은 애들은 없나.

"민짜(미성년자)들 있는 데는 손님들이 더 잘 알던데. (다방이) 많은 건 사실이죠. 저도 두 달 전에 아는 이모 도와주러 서울서 왔어요."

―티켓 영업은 안 하나.

"오빠 바보에요? 모텔에서 전화로 티켓 끊어달라는 사람이 어딨어요. 단속이 심해서 모텔 배달조차 꺼리는데… 차라리 술집에서 부르지. 처음 1시간은 2만 5,000원, 다음 1시간부터 2만원이에요. 2차(윤락)는 따로…."

알려준 대로 술집을 찾아 다른 다방에 전화를 걸었다. 아까와는 달리 티켓 거래가 순조롭다. 잠시 후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나타난 여성이 앉자마자 낯뜨거운 육탄공세를 펼쳤다.

1시간 뒤 티켓 한도가 끝나 갈 무렵 여성이 노래방에 가자고 졸랐다. "2차도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15만원"이라고 답하곤 반응이 시큰둥하자 "마음에 안 들면 일단 차 배달을 시켜 아가씨를 살핀 뒤 결정하라"는 조언까지 하고 사라졌다.

2차 흥정에 실패한 듯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한 여성은 "이 동네에만 아가씨가 300명이니 더 악착같이 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녀는 모처럼의 휴식보다 2차 가지 못한 것을 더 아쉬워했다.

성주에서 티켓 거래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알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도 돌아가는 분위기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식당→술집→노래방→윤락'으로 이어지는 소위 풀 코스 비용이 참외 40상자 값(40여 만원)이지만 순박한 농심(農心)은 진한 분내와 야한 웃음에 녹아 내리기 마련이다.

# 성주 들녘(낮)-싸잡아 욕하지 마라

새벽 5시. 성주 들녘 비닐하우스는 참외 따기가 한창이다. "오전8시만 돼도 비닐하우스 안이 뜨거워져 그 전에 작업을 마쳐야 한다"는 설명처럼 참외 농사는 온 가족이 땀 뻘뻘 흘리며 매달려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2월 햇참외를 따기 시작해 10월에 갈무리하는 이맘 때가 바로 티켓다방 성수기. 꿀 참외에 파리 꼬이듯 겨우내 개점휴업 상태던 다방들이 농부들의 땀방울인 목돈을 노리고 외지에서 아가씨를 끌어 모은다. "영양에 고추, 영덕에 대게 나면 아가씨들이 그 쪽으로 몰려간다"는 한 다방 업주의 말처럼 티켓영업은 비단 성주만의 문제는 아닐 터.

비닐하우스 작업 중간에 차 배달시켜먹는 건 순진한 시골 남정네들의 심심풀이 땅콩이었다. 그러던 것이 사람만 모이면 커피를 주문하고 2,000원짜리 라면 한 그릇 먹고도 기본 4,500원(3인분) 하는 커피를 시켜먹는 여유가 유행이 됐다. 커피 배달은 결국 윤락 배달로 이어졌다.

한 아주머니(60)는 "저 너머 박가는 참외 판돈 1,000만원 들고 다방 아가씨랑 야반도주해 한 달쯤 버티더니 돌아와선 아주 폐인이 됐다"고 귀띔했다. 그래서 카페인(커피) 중독보다 티켓 중독이 더 무섭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여편네가 참견은…, 성주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못박는 바깥 양반 기세에 눌려 쉬쉬하던 티켓다방 문제가 아예 도마 위에 횟감으로 오른 건 최근 한 고등학생이 군 홈페이지 게시판에 '우리 성주를 비판합니다'라는 글을 실으면서부터.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성주는 소득이 가장 많고 빚이 가장 많은 곳… 가족이 피땀 흘린 돈을 갉아먹는 무리는 다방 여자들… 아버지도 커피를 시키는데 어머니가 한숨을 쉰다… 아들이 보고 무엇을 배우겠느냐… 다방 출입은 패가망신이니 당장 끊으세요."

오죽하면 그랬을까. 끙끙 앓던 아낙들의 불만이 천군만마를 얻은 양 인터넷이며 참외밭이며 가릴 것 없이 폭발했다. "차 시켜먹는 놈들 또라인기라. 비닐하우스 앞에 멀뚱하게 아가씨 앉혀놓고 10만원씩 주는 화상이 어딨노. 여편네랑 자식 새끼들 고생하는 건 모르고..." 티켓다방으로 흘러가는 돈이 하루 1억원이 넘을 거라는 소문도 들렸다.

유교의 산실이라고 자부하던 점잖은 양반 고을 남정네들이 궁지에 몰린 것은 당연지사. "부끄러워 말을 못하겠다" "이제라도 단속을 강하게 하자"는 축은 점잖은 편. 강한 반격으로 맞서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 사람들 한번에 몇 백만원씩 룸 살롱이다, 사창가에 뿌리면서 왜 우리만 욕해요. 공급이 있으니까 수요가 있지. 단속을 제대로 하든가."

"팍팍한 농사일에 마땅히 쉴 곳도, 여가를 즐길 곳도 없는 농촌의 현실을 아느냐"는 푸념도 있었다. 한 참외 작목반 회장은 "가뜩이나 경기도 안 좋은데 극소수의 문제를 성주 전체의 일로 매도하지 마라"고 당부했다.

# 성주 읍내(밤)-티켓 단속 현장

오후9시 읍내 한 술집과 M휴게실로 동시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치밀한 사전 정보와 4시간의 잠복 뒤 이뤄진 기습 단속이었다. 욕설을 내뱉으며 거세게 항의하는 남자 손님들과 실랑이가 벌어져 주위는 금세 아수라장이 됐다.

"거래가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막상 현장에서 딱 잡아떼고 원래 아는 사이라고 우기면 도리가 없다"는 게 경찰의 하소연이다. 그래서 미리 업소 현황을 일일이 파악하는 등 공을 들여도 표가 안 나는 단속이라고 했다. 반면에 군은 단속하는 시늉만 내고 표 얻을 궁리만 한다는 게 주민들의 불만이다. 지난해 경찰의 티켓다방 단속 건수가 15건, 올해 6건이지만 군은 실적이 없는 상태다.

일단 단속에 걸리면 영업정지 2개월 처벌이 떨어지지만 벌금 400만원을 내고 영업을 계속하는 게 상례. 단속에 걸린 M휴게실 역시 다음날 버젓이 문을 열고 침침한 업소 안에서 커피 배달 주문을 받고 있었다.

/성주=글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사진 류효진기자

■중소 시·군 다방 45%가 불법 티켓영업 특산물 출하시기 맞춰 女종업원 대이동

다방의 티켓영업은 농어촌과 중소도시에 왜곡된 유흥문화로 뿌리내린 지 오래다.

올해 3월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전국 36개 시·군 지역(대도시 제외)의 다방 1,037개를 상대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45.4%(471개)가 티켓영업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군 지역 다방의 50.4%, 시 지역 다방의 44%다. 하지만 불법영업 사실이 적발돼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행정처분을 받은 업소는 7.2%에 불과하다.

전국 5만개로 추산되는 티켓다방의 영업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강원 속초엔 '콜빠'라는 신종업소에 접대부를 제공하는 업소가 있고 의자 등 집기류도 없는 업소(경기 안산), 외딴 집에서 전화로만 주문을 받는 보도방 형태의 업소(경북 울진) 등도 등장했다. 특히 지역 특산물 출하시기에 맞춰 다방 여종업원들이 대량으로 이동하는 '치고 빠지기' 티켓영업이 농어민들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다.

티켓다방이 청소년 탈선의 온상이 되는 것도 큰 문제다. 식품위생법상 '휴게음식점'으로 분류된 다방은 부모동의서만 있으면 청소년도 취업이 가능해 성 매매나 인권착취에 무방비 상태다.

청보위는 올해를 '티켓다방 근절의 해'로 정하고 인터넷(youth.go.kr)과 전화(02―735―1388)로 청소년 고용 티켓다방 신고를 받는 한편 법개정을 통해 청소년의 다류(茶類) 배달행위를 금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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