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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안내 자원봉사 어윤화 씨/선조의 숨결을 고이 간직 후손의 가슴에 불어 넣는 최고령 종묘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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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안내 자원봉사 어윤화 씨/선조의 숨결을 고이 간직 후손의 가슴에 불어 넣는 최고령 종묘지킴이

입력
2003.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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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지킴이를 하면서 비로소 사람을 만나 교감하는 희열을 느낍니다." 조선왕조의 위패를 모신 곳인 종묘에서 종묘지킴이로 활동하는 어윤화(74)씨. 그는 관람객들에게 종묘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소개하는 무보수 자원봉사집단 종묘지킴이중 최고령 봉사자다. 2000년 3월에 처음 지킴이 활동을 시작한 이래 현재는 종묘를 찾는 사람들 사이에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인기만점인 종묘지기이다. 어씨를 만난 날은 지난 26일. 마침 전날 내린 비로 종묘 전체가 그윽한 숲향기를 내뿜고있었다. 종묘는 1394년 태조 이성계의 명에 의해 처음 조성될 때 심었던 수목이 임진왜란이나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에도 크게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돼 고즈넉한 멋이 조선왕조의 다른 궁궐들을 앞선다. "종묘는 서울의 허파"라고 운을 뗀 그는 "노년을 무기력하고 답답하게 보내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이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고 사니 복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어씨는 서울시청에서 도시계획과 공무원으로 36년을 일하다 1991년 퇴직했다.

토목기술사 면허가 있어서 은퇴 후에도 작은 건설회사 이사로 일했지만 마음은 늘 우리 문화재와 고미술, 옛 건축물에 대한 젊은 시절부터의 동경과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기회는 우연히 왔다. 칠순이 되던 2000년 정월, 우리궁궐지킴이를 모집한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그 다음날로 등록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궁궐지킴이가 됐다. 궁궐지킴이는 종묘를 비롯, 덕수궁과 경복궁 창경궁 등 서울시내 중요문화유산인 조선왕조의 궁궐들을 관람객들에게 안내하는 자원봉사자 모임. 교사나 역사전공 대학생 등 젊은층이 주축이었지만 칠순의 열혈청년은 평생의 꿈을 이뤘다는 기쁨에 최고령 타이틀이 오히려 반가웠다.

"1930년에 났으니까 일제시절에 교육을 받았지요. 그때야 내선일체라고 해서 우리 역사 교육은 제대로 없었죠. 그래서 그런지 늘 우리 것에 목말랐는데 종묘지킴이를 하면서 하나둘씩 배우고 같은 지킴이들하고 역사공부그룹 활동도 하고 그러면서 새삼 우리문화의 매력에 점점 더 빠져들어요. 지금도 고려왕조실록을 읽고있어요."

조선왕조시대의 문화유산을 안내하는 일을 하면서 고려왕조실록을 읽고 있는 이유는 뭘까. 어씨는 "역사의 수수깨끼를 풀기위해서" 라고 답한다.

종묘는 조선왕조의 위패를 모신 곳인데 놀랍게도 고려시대 공민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따로 두고있다. 종묘 건립 당시부터 만들어진 곳이라고 한다. 고려왕족을 수장시킬 정도로 무자비하게 숙청했던 태종이 무슨 연유로 공민왕의 위패를 모셨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어씨의 요즘 숙제다.

안내원 교육프로그램에 의존하지 않고 궁금한 것은 스스로 문헌을 뒤적이고 전주의 전주이씨 사당도 찾아가는 등 더 깊이있게 안내하려는 노력덕에 어씨를 따라 걷는 종묘 길은 지적인 즐거움이 가득했다.

"…종묘에 들어서면 모든 길이 세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가운데는 어도라 해서 임금이 걷는 길이었고 왼쪽은 영의정, 오른쪽은 세자가 걸었습니다. 세자가 오른쪽에 선 이유는 맞은편 선조들의 영이 보기엔 왼쪽이니 영의정보다 더 웃자리였던 셈이구요.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의 풍습을 엿볼 수 있지요… 위폐를 모신 정전 앞마당엔 널찍널찍한 박석들이 깔려있는데 표면이 거칠거칠해요. 왜 반짝거리게 윤나도록 다듬지않았을까요? 왜냐하면 선조들이 내려보실 때 햇빛이 좋은 날은 반짝거리는 돌이 빛을 반사해 눈을 부시게 만드니까 그걸 방지하려고 한거예요. 돌 하나를 깎는데도 얼마나 세심한 마음을 담았는지 알수있지요…. 정전 앞쪽에 공신당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의 내로라 하는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인데 한 때는 매국노인 이완용이도 저기에 모셨어요. 해방되면서 바로 내쫓기긴 했지만 조선왕조의 슬픈 운명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지요…종묘는 제례공간이라 꽃나무를 심지않습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너무 살풍경하지 않느냐는 한마디에 그냥 개나리며 진달래며 가져다 심은거예요. 그때 역사를 제대로 아는 rhksflrk 하나라도 있었으면 그런 일이 있었겠어요. 개탄할만한 일이지요…."

어씨의 종묘안내는 매주 토요일 실시된다. 요즘엔 꼭 그에게 안내받고 싶다고 신청하는 팬들도 꽤 생겼다. 다만 아직도 종묘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외국인만 못한 것 같아 안타까울 때도 있다.

"관람객이 10이면 그 중 7은 한국인이지만 대부분이 학교에서 특별활동으로 온 학생들이예요. 반면에 외국인은 일본인이나 서양인 모두 한둘씩 직접 찾아오는 자발적인 참관객들이지요. 우리 문화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좀 더 커져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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