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차례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살아있는 전설'로 불렸던 세기의 명배우 캐서린 헵번이 29일 오후 3시(현지시간) 미국 코네티컷 자택에서 9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헵번은 87세의 나이에도 무대에 설 정도로 연기에 열정을 보였지만 만년에는 파킨슨병과 고관절 수술 등으로 건강이 악화했다. '모닝 글로리'(1933), '초대받지 않은 손님'(1967), '겨울의 사자'(1968), '황금연못'(1981) 등으로 네 차례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12회나 후보에 지명됐다. 메릴 스트립이 기록을 깨기 전까지는 최다 지명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고, 행동도 관습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바지와 스웨터 차림을 좋아하는 등 복장도 파격적이었다. 그녀가 60년 넘게 은막에서 활동하며 보여준 강인한 모습은 미국 여성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1985년 그녀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스러운 여성'으로 뽑히기도 했다.
1928년 뉴욕에서 '요즘 나날'로 데뷔한 헵번은 브로드웨이에서 '전사(戰士)의 남편'으로 인기를 얻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32년 '이혼 협정'으로 은막에 데뷔한 후 세 번째 영화인 '모닝 글로리'로 아카데미상을 거머쥐었고 '작은 아씨들' '스코틀랜드의 메리여왕' '필라델피아 스토리' '아프리카의 여왕' '지난 여름 갑자기' '밤으로의 긴 여로' 등에 출연했다.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지만 그는 늘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지 못해 "세 배는 더 잘 할 수 있었다, 능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했다"며 자책하곤 했다.
1907년 5월12일 뉴잉글랜드의 진보적 상류층 가정에서 비뇨기과 의사인 아버지와 여성참정권 운동가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그는 28년 필라델피아의 백만장자 러들로 오그덴 스미스와 결혼했으나 6년 뒤 이혼, "결혼은 자연적 본능이 아니다"며 다시는 결혼하지 않았다. 제임스 스튜어트, 험프리 보가트, 존 웨인, 헨리 폰다 등 당대의 일급 배우들과 나란히 섰지만 그의 진정한 파트너는 스펜서 트레이시였다. 두 사람은 27년 간 연인 사이였지만 트레이시가 유부남이자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결혼하진 않았다. 그는 82년 교통사고로 한쪽 발을 잃을 뻔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그 해 닉 놀테와 코미디 '그레이스 퀴글리'를 찍었다. 87세 때인 94년 워렌 비티의 로맨틱 코미디 '러브 어페어'에서 비티의 숙모 지니 역으로 출연한 것이 마지막 영화였다.
모두 52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는 99년 미국영화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설적인 여배우 1호'로 뽑히기도 했다. 77세 때 베스트셀러 '아프리카의 여왕 촬영기', 84세 때 자서전을 남겼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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