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시작을 알리는 짧은 암전(暗電)에 이어 무대로 나온 윤연선은 의자에 다소곳이 앉았다. 클라리넷과 클래식기타 전주가 흐른 후 청아한 목소리에 실린 '얼굴'이 객석으로 울려 퍼졌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벌써 51세가 된 그의 목소리는 30년 전 데뷔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노래에 얽힌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눈물이 핑 돌았다.29일 저녁 6시 서울 서대문 문화일보홀에서 열린 윤연선 콘서트는 객석 300석의 조촐한 규모였지만 뜻 깊은 자리였다. 이날 공연을 기획하고, 홍보하고, 특별출연자를 교섭하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를 맡은 인터넷 포크송 동호회 '바람새'(http://windbird.pe.kr)측은 '청개구리의 부활을 꿈꾸며'를 공연 부제로 내걸고 6월29일이란 날짜가 갖는 의미를 강조했다. 70년 6월29일 명동 YWCA 공연에서 한국 포크 가요사가 시작됐고, 당시 통기타 가수들의 본거지가 명동의 청개구리 찻집이었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특정 시대, 특정 장르의 가요에 대한 추억과 애호에서 비롯한 특별한 정서가 아니더라도 이날 공연의 의미는 컸다. TV나 FM라디오를 통해 일방적으로 노래가 보급되는 공급자 위주의 가요 시장 흐름과 달리 수요자가 노래와 가수를 선택해 만나는 새로운 문화 소비 양식의 시도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 만했다.
그래도 관객이 감명을 느끼지 못하는 무대라면 이 모든 의미 부여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얼굴'에 이어 윤연선은 '그 소년' '구름과 달' '꽃피는 마을' '나 돌아가리라' '포틀랜드 타운'(Portland Town) '고아' 등을 들려 주었다. 한창 때를 넘긴 그가 애써 곱게 소리를 모아가는 모습이 손에 땀을 쥐게도 했지만 타고난 목소리는 감동을 이어주기에 족했다. 더욱이 특별 출연자들이 빛났다. 오랫동안 양희은의 음악 감독을 맡는 등 '한국 포크계의 대부'로 불리는 김의철은 공연 내내 기타 반주 솜씨를 뽐낸 데 덧붙여 소박한 목소리로 '군중의 함성' '불행아'를 불렀다. 동요·포크 가수인 이성원의 노래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특히 '아름다운 것들' '불나무'의 가수 방의경이 미국에서 날아 와 여전히 젊은 모습으로 노래를 불러 관객을 추억여행으로 이끌었다.
공연이 끝난 후 많은 관객들은 눈자위가 붉어진 모습이었다. 70년대의 암울했던 시대 상황에 대한 출연자들의 회고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거나 사회 언저리로 밀려난 친구들에 대한 아픈 기억을 일깨웠을 수도, 아직 손에 잡힐 듯한 젊은날의 기억을 되살렸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공연이 끝나고도 한 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관객의 저절로 흐른 눈물은 이런 공연이 계속 이어지리라는 희망의 자국이기도 했다.
/황영식기자 yshwang@hk.co.kr
사진 촤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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