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의 하투(夏鬪)가 꼬리에 꼬리를 문 형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철도파업에 이어 2일엔 금속연맹 및 화학섬유연맹, 9일엔 보건의료노조 등이 줄줄이 파업에 나설 태세다. 가뜩이나 갈 길이 먼 한국경제가 노사분규에 사지가 모두 묶인 형국이다.이제 노사분규는 가끔 앓는 감기 정도가 아니라 연례행사처럼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한국병'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한국의 노사분규를 보는 외국인들의 눈은 무척 싸늘하다.
엊그제 방한한 한미재계회의의 모리스 그린버그 회장은 "한국 내 투자장애 요인은 불투명한 기업회계와 모호한 제도 그리고 호전적인 노조"라고 지적하면서 "다국적 기업이 투자처를 선정할 때 노사관계가 안정적인 국가에 우선 투자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실 노사관계에 국한시켜 볼 때 한국은 투자하기 좋은 나라가 결코 아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3년 세계경쟁력연감'에 따르면 우리의 노사경쟁력은 인구 2,000만 명 이상인 조사 대상 30개국 중 꼴찌다. 노사관계는 생산적이기 보다는 적대적으로 나타났고 경쟁력은 태국(7위), 터키(12위), 중국(20위), 필리핀(23위)등 주변 개발도상국 수준에도 못 미친다. 외국기업에 대한 법적 차별성에 있어서도 최하위(30위)였다.
참여정부는 출범과 함께 동북아 중심국가를 국가 의제로 설정하고, 경제특구를 설치해 외국 기업을 대거 유치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1998년 이후 5년 동안 반복되는 대형 노사분규로 매년 1조6,000억원 이상의 생산차질이 빚어지는 나라다. 지난해 노사분규로 발생한 생산차질액은 1조7,000억원이었다. 수출차질액만도 6억800만 달러에 달했다. 지금처럼 자고 일어나면 불법 노사분규가 판을 치는 나라에 선뜻 투자하겠다고 덤벼드는 외국자본이 있을 지 의문이다. 이렇게 봇물 터지듯 일어나고 있는 파업사태에는 정부의 원칙 없는 대응이 한 몫을 했다. 화물연대와 철도, 조흥은행 파업사태 결과가 보여주듯 정부는 고장 난 신호등 처럼 '친(親) 노동과 친 시장'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반복해 왔다. 불법 파업이 기승을 부렸지만 주동자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 없이 노조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해 '노조 편들기'라는 지적을 자초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불법파업엔 엄정 대처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실제 단호한 대응이 이뤄진 것은 철도 파업 사례가 처음이다. 말만 많고 실천과 행동이 없는 정부의 무기력증을 빗대 나토(NATO:No Action Talking Only)국가라는 비아냥마저 등장했다. 오죽했으면 경제5단체가 긴급 회장단회의를 갖고 불법파업이 계속되면 투자를 축소하고 공장을 해외로 이전할 수 밖에 없다는 엄포 섞인 하소연까지 했을까.
정부는 더 이상 정치 논리를 앞세운 노조의 주장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노동자 뿐 아니라 시장과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정책을 세우고 일관된 정책을 집행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생산성을 도외시한 높은 임금과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무너진 독일 경제는 좋은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노사분규가 계속되는 한 국민소득 2만 달러나 동북아 중심국가를 향한 소망은 백일몽에 지나지 않는다. 라인강의 기적은 몰락했지만 한강의 기적은 이어져야 한다.
이 창 민 경제부 부장대우 cm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