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르몬이란여자의 일생에서 두 가지 큰 사건은 사춘기 초경이 시작되는 일과 갱년기 생리가 없어지는 일일 것이다. 여자라면 누구나 겪는 이 생리적 신체적 변화는 여성호르몬 분비와 관련이 깊다. 연세대의대 산부인과 박기현 교수는 "사춘기에 난소의 기능이 시작되면서 여성호르몬이 분비돼 생식기능을 갖게 되며, 갱년기에는 여성 호르몬 분비가 사라지면서 생리가 없어지게 된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성호르몬은 에스트로겐. 유방을 크고 아름답게 만들고, 엉덩이의 지방층을 두텁게 하며, 여성 생식기를 탄력 있고 튼튼하고 유연하게 만드는 등 여자 특유의 몸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에스트로겐이 부족하면 성생활시 통증을 느끼고 저항력도 약해져 염증이 자주 발생한다. 또 배란에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뼈를 성장하게 하고, 요도와 방광을 탄력 있고 튼튼하게 한다. 난소에서 함께 분비되는 프로게스테론 역시 여자의 생식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다. 프로게스테론이 없다면 임신은 불가능하다. 수정된 난자가 자궁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 임신을 유지하도록 하며, 유방 발육에도 일조한다. 에스트로겐이 여자의 몸이 건강하게 활동하도록 세포 수를 늘리거나 조정한다면, 프로게스테론은 이 세포의 성질을 부드럽게 한다.
남자의 호르몬으로 알려진 테스토스테론 역시 여자에게도 중요한 호르몬이다. 성적 욕망을 일으키고 성적인 극치감을 느끼는 데 관여한다. 갱년기가 되면 테스토스테론 분비 수치는 젊었을 때보다 거의 반으로 떨어진다.
몸 어디에나 존재하는 성호르몬
에스트로겐 호르몬은 주로 난소에서 분비되지만, 위 간 신장에서도 분비된다. 성호르몬 생산이 난소 혼자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뇌에는 시상하부라는 신비의 샘이 있는데, 이 명령에 따라 신경성 호르몬이 시상하부 바로 밑 뇌하수체에 도착하면, 뇌하수체 호르몬은 피를 타고 난소 갑상선 부신 등 신체 각 부위의 내분비샘에 도착, 다양한 호르몬을 분비하도록 명령한다. 시상하부―뇌하수체―난소라는 축을 따라 시상하부에서 난소의 성호르몬 생산량을 정확하게 감지, 난소의 자극을 감소시키거나 혹은 증가시켜 자율적으로 에스트로겐 양을 조절하게 된다. 박교수는 "마치 자동온도조절장치처럼, 에스트로겐 분비량은 주기적 변화를 거듭하며 여자의 몸과 마음의 리듬까지도 조절한다"고 말한다.
난소는 여자의 몸에서 가장 먼저 노화현상을 겪는 곳이다. 슬프게도 난소는 눈의 수정체나 귀의 고막, 치아를 받쳐주는 치조골보다도 수명이 짧다. 여자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 여자의 평균 폐경 나이는 만 49.3세(2002년 대한폐경학회 조사). 난소가 늙으면, 당연히 난소의 기능이 약화돼 에스트로겐 생산량이 현저히 감소하게 된다.
HRT, 시작하지도 중단하지도 말라?
호르몬대체요법(Hormone Replacement Therapy· HRT)은 배터리를 갈아 끼우듯, 폐경기에 서서히 에스트로겐 수치가 떨어지면서 나타나는 생식능력 상실과 집중력 감퇴 등 증상을 보충한다는 개념에서 시작됐다.
1942년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얻은 후 HRT를 받은 미국 여자는 1,300만명을 헤아린다. 국내에서는 80년대초 도입돼 현재 국내 폐경여성의 7∼8%에 해당하는 50여만명이 이를 받았다. 10년 넘게 투여받은 경우도 많다. 진취적이며, 새로운 치료법을 도입하는데 대담한 여성들은 갱년기 제2의 삶을 출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무런 거부감 없이 HRT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2002년7월 미국립보건원(NIH)이 실시한 호르몬요법의 장단점 연구(WHI· Women's health initiatives)는 폐경 여성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1942년 최초의 에스트로겐 제품 '프레마린' 의 도입 이후 가장 큰 규모(16만여명)로 이루어진 이 임상연구에서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복합 약제인 프렘프로를 장기간 복용할 경우 유방암 심장병 뇌졸중 폐색전증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결론이 도출된 것이다. 국내에서는 호르몬요법제제 매출이 2002년에 비해 30%정도 감소했으며, 미국에선 약 절반이 복용을 중단했다. 대한골다공증학회 조사에서는 HRT를 받고 있는 여자의 74%가 부작용 우려 때문에 중단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WHI연구 100% 따라야 할 데이터?
1년이 지난 현재 세계의학계는 여전히 혼란스런 상태다. 한쪽에선 알츠하이머병이나 유방암 등 위험이 높아진다는 확신에 찬 보고들이 잇따르는가 하면, 또 한쪽에선 WHI 연구의 심각한 문제점을 제기하며, HRT는 여전히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치료법이라는 주장도 강하다. 여전히 HRT를 옹호하는 입장인 북미폐경학회는 오로지 한가지 경구용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제제를 사용한 환자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한 결과를 어떻게 젤 형태의 패치나 크림, 임플란트를 통한 HRT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느냐고 반박한다. 에스트로겐은 제제 종류와 투여 경로 뿐 아니라, 투여법도 다양하다. WHI연구의 임상시험 대상자는 한달 내내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을 복합해 복용, 출혈(월경)을 하지 않는 지속적 병합법을 사용한 경우다. 최근 많은 여자들은 출혈을 하는 주기적 병합요법을 더 선호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의 차이 역시 WHI 연구를 일률적으로 일반 환자들에게 적용하기 힘든 부분이다.
대한폐경학회에서도 5월 WHI에 대한 공식견해를 내놓았다. 폐경학회는 다른 제형, 다른 투여 경로를 가진 HRT에 대해서는 WHI의 부작용 발표를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대상자의 연령이 평균 63.3세로 일반적으로 HRT를 받는 여자의 나이보다 높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나이가 들수록 암이나 성인병의 발생 위험은 훨씬 더 높아지므로 연구결과가 과장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산부인과나 내과 의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환자들과 활발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과거엔 일방적인 권고였다면, 최근 의사들은 HRT의 장단점을 설명하고 환자가 치료여부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강병문교수는 "의학의 발전을 통해 인류가 얻게 된 하나의 진리는 표준화 치료법이란 없다는 것"이라면서 " 호르몬 치료는 여자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생체반응, 효소반응을 나타내므로, 이에 따른 개별 맞춤 처방이 갱년기 증세는 덜어주고, 개인별 위험은 낮추는데 최적"이라고 주장한다. 팔다리가 쑤시고 안면홍조나 불안 초조 같은 갱년기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 HRT를 대체할 그 어떤 극적인 치료법이 없다는 것이다.
강병문 교수는 "하루 외래환자 60명 가운데 호르몬치료를 필요로 했던 경우가 8∼10명이었는데 작년에 확 줄어들었다가 최근 다시 회복하는 추세" 라고 말했다.
/yjsong@hk.co.kr
● 연세대의대 산부인과 박기현교수
"안면 홍조 발한 수면장애 근육통 관절통 질건조감 등 급성폐경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치료법은 여전히 호르몬 요법밖에 없습니다." "인생에서 무엇이 가치 있다고 여기십니까. HRT를 통해 당신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인생을 살찌운 것은 무엇이며, 혹시 더 힘들게 된 것은 무엇인지 적어보십시오. 이제 막 반환점을 돈 인생입니다. 아직은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치료법이죠."
HRT에 대해 대다수 산부인과 의사들의 태도는 여전히 긍정적이며 적극적이다. 박기현교수 역시 자신에게 HRT를 받던 많은 환자를 잃을까 두려워서라기보다는 미국 제약회사가 미국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WHI연구 결과를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현실에 엄청난 거부감을 나타낸다.
그는 "유방암 발생빈도만 보더라도 서양에서는 3분의 2가 50대 이후 발생하는데 비해, 국내에서는 3분의 2가 50대 이전에 발생한다"면서 "각종 질병에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데도 불구하고, HRT가 유방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심장병이나 치매 예방을 목적으로 HRT를 사용해선 안된다. 이런 부정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WHI는 골다공증으로 인한 골절과 대장암 위험에 대한 효과를 뒷받침 해준다. 주변 여자들이 왜 HRT를 사용하고 있는가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의사는 환자들에게 HRT를 권고할 수는 없다. 개인별로 이익과 위험을 저울질해 현명한 판단을 내리도록 도와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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