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 언어 성폭력 등 '2차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각 대학들이 신체적 접촉 등에 의한 직접 성폭력 방지 등을 위한 장치들을 마련하면서 성폭력 관련 사건이 많이 줄어든 가운데 언어 성폭력 등 2차 성폭력은 오히려 확산되는 추세다.서강대는 지난 달 19일 성폭력대책위원회 회의를 열고 모대학원 K(48) 교수를 징계위원회에 공식 회부했다. K교수는 2001년 회식 자리에서 석사과정 대학원생 최모(32·여)씨를 성추행한 혐의로 지난 해 12월 징계위에 회부돼 3개월간 정직 처분을 받고 손해배상소송에서 2,0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대책위가 K교수를 6개월 만에 다시 징계위에 회부한 것은 K교수가 성폭력을 공개한 피해자에게 정신적, 물리적 압력으로 보복을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 K교수는 올 1학기 복직한 뒤 공공연히 자신의 책상과 집기를 피해자 최씨와 사건 당시 증인들이 공부하는 프로젝트실로 옮기고 상주 하겠다는 말을 하고 다녔고, 대책위측은 이를 '2차 성폭력'으로 규정했다. 대책위측은 또 사건이후 최씨에게 "네가 내 수업을 듣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말로 논문심사를 앞두고 있던 피해자를 압박한 동료 교수들의 행위도 '2차 성폭력'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는 징계위 회부 대신 자체적으로 재발방지 대책을 제출하도록 대안을 제시했다.
징계위 결정이 내려지자 교수들 사이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강대 교수회는 여름방학중 열릴 교수 워크샵에 '여성학 강의'를 포함시켜 성폭력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기회를 갖도록 할 예정이다. 또 최근 H교수의 성폭력 문제가 새로 제기되자 이 대학 교수 47명은 "동료 교수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고 학교 당국에 신속한 진상규명과 납득할 만한 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연세대 성폭력대책위도 지난 달 23일 전직 강사 A씨의 '언어 성폭력' 문제를 공식 논의했다. A씨가 수업 도중 '교재 구입하는데 돈이 모자라면 남자애들은 막노동판에 나가서 일하면 되고, 여자애들은 X를 팔면 된다'는 등의 여성 비하 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키자 학교측은 학교측은 A씨의 강사 재임용을 취소했다. A씨는 자신의 발언이 왜곡 전달됐다며 언론 등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총여학생회측이 강력히 이의를 제기,성폭력대책위가 열렸다. 총여학생회측은 학교측에 이 문제의 처리과정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성폭력 방지 프로그램에 교수 및 강사가 의무적으로 참여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 서울대의 경우 2년전 성폭력, 성희롱 상담소를 통해 성폭력, 성희롱 예방 지침서 1만5,000부를 학생들과 교직원, 교수들에게 배포하고 성폭력 문제에 대한 공개 강연회를 갖기도 했다. 이화여대와 한양대 등도 성폭력 예방 및 근절에 관한 자체 규정을 제정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각 대학의 성폭력 예방 움직임에도 불구, 대응 강도는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일단 사제간이라는 특수 관계 때문에 피해자가 사실을 공개하기 어렵다는 점이 성폭력 근절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고 있다. 지방 A대의 경우 중문과 O교수가 98년부터 5년동안 8명의 여학생에게 접근, 자신의 집과 연구실 등에서 강제로 성관계를 맺거나 추행했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돼 학생들이 지난 달부터 수업을 거부하고 이 사건의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O교수는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고 학교측은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상태다. 서강대 K교수 성폭력 피해자로 '성폭력 근절을 바라는 서강인 모임'(cafe.daum.net/sghope)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최씨는 "성폭력의 가장 큰 문제는 가해자가 자신이 어떤 피해를 주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데 있다"며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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