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전동거를 경쾌한 터치로 그린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가 인기를 끌면서 원작소설의 작가 김유리(27), 안동열(29)씨 부부도 덩달아 바빠졌다. 부산 토박이로 동거 4년 만인 3월 화촉을 밝힌 이들은 인터뷰와 TV 출연, 팬 미팅 등을 위해 지난 주말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드라마 덕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소감은 어떨까. 뜻밖에 "좀 씁쓸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2년 전 소설을 냈을 때도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지만 동거를 우스갯거리로 여기는 분위기여서 한동안 외부 연락을 끊고 '잠수'를 해야 했어요. 요즘은 적어도 '발칙한 계집애' 취급은 하지 않고 '작가님' 대접도 해주는 걸 보면 드라마의 힘이 대단하긴 하네요." 29일 혼전동거를 주제로 열린 KBS2 '100인 토론'에도 출연한 두 사람은 "그래도 드라마의 인기 덕에 동거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되고 보는 눈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아 반갑다"고 말했다.
"정말 그런 남자 데리고 살아요?" "이현우가 맡은 동준이 실제 인물인가요?" 김씨가 요즘 가는 곳마다 받는 질문들이다. "우리 얘기를 담은 소설과 드라마의 공통점이라고는 제목과 동거라는 설정, 여자 아버지가 경찰이라는 것 등 딱 세가지 뿐이에요. 황당무계하지만 드라마 속 얘기가 현실이기를 바라는 팬들에게 '아니오'라고 말하려면 괜히 미안해져요."
김씨도 한없이 착하기만 한 드라마 속 정은(정다빈)과는 거리가 멀지만, 특히 안씨는 천하의 바람둥이인 경민(김래원)과 달리 아르바이트 나간 김씨를 위해 점심값 2,000원을 아껴 고등어 굽고 된장찌개 끓여 저녁상을 차리는 마음 따뜻한 남자다. 김씨는 "우리 '야옹이'(안씨의 애칭)가 경민이 같았다면 당장 머리를 박박 밀어버렸을 것"이라며 웃는다.
부산 동아대 문학동아리에서 만난 두 사람이 동거를 '감행'한 것은 1999년 초. 집이 좁아 할머니와 한 방을 쓰던 김씨가 시나리오 습작을 위한 '나만의 공간'을 갖기 위해 "다리 몽댕이를 쌔리 빠사뿐다"고 펄펄 뛰는 아버지를 간신히 설득해 독립한 것이 계기였다. 동거를 먼저 제의한 쪽은 안씨. "주위에 행복하게 사는 부부가 하나도 없었어요. 무작정 결혼해서 후회하기보다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흘 밤낮을 고민한 끝에 동의한 김씨는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고양이 한 마리 길러도 되느냐"고 물었다. 두 사람의 애칭이 '주인님'과 '야옹이'인 걸 알 리 없는 어머니의 대답은 "니 방인데 니 알아서 해라"였다.
몇 달 뒤 옥탑방으로 이사하던 날 친구들의 말실수로 동거 사실을 부모님에게 들켰다.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지만 두 사람의 '진실'을 믿은 양가 부모님은 "열심히 살라"며 허락했다.
그 동안 낭만이 깃든 옥탑방을 떠나 결혼도 하고 방 두 칸에 거실, 부엌이 달린 전세집에서 살게 된 두 사람은 "동거 시절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으며 티격태격 싸움도 많이 했지만 그러면서 함께 살고, 사랑하는 법을 터득했기에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었다"고 당당히 말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올 가을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며, 김씨는 결혼에 이르는 과정과 결혼 후 생활을 그린 '옥탑방…' 3,4권을 집필중이다. 두 사람은 "어쩌다 보니 '혼전동거 전도사'처럼 됐지만, 생활비 아껴 보자거나 육체적 쾌락을 위한 동거에는 반대한다"며 "드라마에서 동거 이유를 돈 때문으로 그린 점이 가장 아쉽다. 영화는 좀 달랐으면 한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동거를 삶의 한 방식으로 택하고 있는 마당에 동거가 옳으냐, 그르냐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해요. 어떻게 해야 행복한 결혼으로 가는 바람직한 동거가 될 수 있느냐를 따져야죠. 그러려면 커튼 뒤에 숨은 동거 문화를 드러내놓고 얘기하는 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희 이야기와 드라마, 영화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어요."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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