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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총평과 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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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총평과 노총

입력
2003.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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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국 근로자들에게 춘투(春鬪)란 말처럼 가슴 설레게 하는 말이 있었을까. 노동조합 결성 자체가 허용되지 않던 1960∼70년대, 봄이면 신문 외신면을 장식하던 일본의 춘투 소식은 한국 근로자들의 선망과 동경 그 자체였다. 머리띠를 맨 수 많은 근로자들이 깃발을 흔들며 시위를 벌이는 모습이 까마득한 거리감을 일깨웠다. 파업으로 지하철과 철도가 모두 섰느니, 공장 가동이 멈추었느니 하는 소식은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오죽 부러웠으면 토(春鬪)란 일본어가 춘투란 우리말로 정착이 되었을까.■ 그럴 만했다. 전국의 근로자들이 일사불란하게 파업과 태업과 농성으로 힘을 합치면, 사용자측도 정부도 무릎을 꿇고 말았다. 74년 춘투로 얻은 평균 임금인상률은 무려 32.9%였다. 이 투쟁을 주도한 단체는 강경노선으로 유명했던 좌파 노조 총평(總評·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이었다. '전전에는 육군, 전후에는 총평'이란 말을 유행시켰을 정도로 위세가 등등했던 이 단체는, 정치를 변화시켜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정치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한 과격한 투쟁노선이 스스로 묘혈을 파는 결과가 되었다.

■ 군국주의 시대의 군부 수뇌에 비유되었던 총평의 대표가 춘투를 앞두고 총리와 담판을 벌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총평이 사양 길에 접어든 계기는 공교롭게도 74년의 임금 대폭인상이었다. 73년 오일쇼크로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상황에서 기업에 무리한 부담을 떠안기자 이기주의가 지나치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과격한 정치투쟁도 일본국민이 손사래를 치게 한 큰 원인이었다. 공식적으로 좌파정당을 지지한 정치노선도 그렇고, 국가와 국기 게양을 부정하는 투쟁노선도 그랬다.

■ 국민의 외면은 총평이란 이름으로는 더 이상 노동운동을 할 수 없게 했다. 한 때 80%를 넘던 노조 조직률이 27.6%로 떨어진 87년 총평을 해체하고 부드러운 어감의 연합(連合·전일본민간노조연합회)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운동노선도 대화와 타협으로 바뀌었다. 한국의 노사운동에서 상급단체에 대한 조직적인 반발이 일어나는 현상은 결코 예사 일이 아니다. 부산 대구지하철 파업 때 조합원들이 조직적으로 이탈한 것도 그렇고, 현대자동차 노조가 전면파업을 철회한 데는 상급단체에 대한 불신의 뜻이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 한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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