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 통합 논쟁이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된 1980년대 후반 의료보험 개혁에 대한 시각에는 세가지 흐름이 있었다.첫째는 선진국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한 낮은 보험료로는 국민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충분히 보장해주기 어렵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적정수준의 보험료 인상이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조합방식 의료보험이 계층간 보험료 부담의 불공평을 만들어내고 지역의보의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가져와 의료혜택을 하향평준화시킨다는 지적이었다. 셋째는 한국의 의료체계가 워낙 비효율적이고 의료비용을 낭비하는 구조로 짜여져 있기 때문에 의료의 공공성 강화 등 의료인프라의 개혁이 더 급하다는 시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7월 1일 완성되는 건강보험 통합정책은 두 번째 시각에 근거한 것이다. 건강보험 통합으로 도입된 새로운 보험료 부과체계로 과거보다 소득계층간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이 상당히 향상되게 됐다. 또한 조합방식의 고질적 문제점인 조합간 재정격차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됨으로써 보험혜택을 확대할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점이 통합정책의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보통합은 건강보험의 '만병통치약'이 결코 아니다. 건강보험 통합은 세 마리의 토끼 중 한 마리를 잡은 것에 불과하다. 적정한 수준의 보험료 부담과 낭비적인 의료체계의 개혁이 통합과정에서 더욱 더 시급한 과제로 부상되었다.
충분한 의료혜택을 받고 있는 유럽의 복지국가 보험료는 소득대비 평균 10%를 상회하고 있다. 우리 나라 건강보험은 4%에 불과하다. 낮은 보험료로 의료혜택을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통합체제에서도 적정수준의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국민들은 혜택이 확실히 돌아온다면 보험료의 추가적인 부담에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국민들이 건강보험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어디에 있는지 정부는 철저히 검토하여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는 획기적 정책을 펼쳐야 한다.
신뢰회복을 위한 정책으로 우선 두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첫째, 좀 과장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자영업자 소득파악 문제의 해결없이 건강보험의 신뢰를 구축하기 어렵다. 상황이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보다 강력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둘째는 건강보험공단을 대국민서비스기관으로 혁신적으로 재편해야 한다. 현재의 건보공단은 국민들에게 보험료를 징수하는 기관 이상의 의미가 없다.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제공해주는 사업만 제대로 해도 공단의 이미지는 혁신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며, 통합체제의 연착륙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인 의료체계를 적정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의료체계로 재편하는 것 또한 통합체제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핵심과제이다. 여기서는 수가체계의 개편이 핵심이다. 현행 행위별 수가제로는 급증하는 의료비를 적정한 수준에서 감당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포괄수가제나 총액예산제 도입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해야 한다.
더불어 전체 의료자원의 10%에 불과한 공공의료자원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정책도 시동을 걸어야 한다. 지금처럼 민간의료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의료체계로는 통합체제이건 조합체제이건 적정한 비용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체계를 구축할 수 없다.
통합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정치권과 이해집단간의 갈등을 봉합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특히 대립적인 모습을 보인 노동운동은 이제 대승적인 차원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 안으려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의료서비스의 향상과 건강보험의 발전을 위해 정부, 건강보험공단, 노동운동 그리고 시민사회가 대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김 연 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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