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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콘크리트 뜯어내니… 되살아난 생명의 추억 전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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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콘크리트 뜯어내니… 되살아난 생명의 추억 전주천

입력
2003.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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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여문 불알들이 전주천을 휘젖고 있었다. 팬티야 입으나 마나. 한 바탕 자맥질 뒤 솟구쳐 나오려면 고무줄은 제 기능을 못하기 일쑤였고, 구릿빛 깨복쟁이들은 누가 보든 말든 고개 내민 그것들을 대충 추스려 담곤 했다. 갓 부활한 싱싱한 자연에 살을 맞댄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배운 가림의 미학은 뒷전이었다. 아이들이 물 밖으로 나온 건 해가 멀리 투구봉 곁으로 내려앉고, 가슴팍에 닭살이 돋고도 한참이 지난 뒤였다. 평화초등학교 6학년 한 반 친구들이라고 했다. 자주 오냐는 말에 "내일도 올 거예요"를 합창한 벌거숭이들은 젖은 몸을 그대로 자전거 안장에 얹고 물비린내를 흩뿌리며 집으로 내달았다. 지난 25일, 한벽당 아래 전주천변 풍광은 전주출신 작가 윤흥길이 3년 전 '전주이야기'에서 절절히 읊었던 옛 고향의 향수를 무안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전주천 이야기

한강에 익숙한 서울 촌놈 눈에 전주천은 보잘 것 없어 보였다. 40m 남짓의 강폭에다 어른 무르팍에서 찰랑대는 수량도 그러했다. 하지만, 전주사범 학장을 지낸 이호선씨 말 마따나 '지금이야 말라깽이 팔십 할머니 젖가슴만도 못한' 모습이지만, 그 천이 고도 전주의 젖줄이고, 누대 풍류와 애환의 밑천임에야 절대 토를 달 일이 아니다.

노령산맥 물을 받아 임실군에서 발원한 전주천은 전주 시내를 북동으로 관통한 뒤 멀리 만경강으로, 서해로 이어지는 도심 생활하천이다. 과거 어디나 그랬듯이 전주천 역시 주민들의 빨래터였고, 목욕터 놀이터였으며, 고기 병 묻어두면 팔뚝만한 메기 쏘가리도 심심찮게 들던 천렵장이었다. 노송동 사는 김철근(60)씨는 "고기잡고 오다가 땀나면 다시 가고, 땀 식히고 돌아오다 다시 되짚어 가서는 아예 천변에서 자고 온 적도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인구가 늘고 생활하수가 스미면서 강은 서서히 자정력을 잃어갔고, 치수(治水)한답시고 둔치에 시멘트를 바르면서 강 생명들도 푸졌던 모래톱과 함께 사라져갔다. 보를 치고 물길을 막은 뒤로는 유기물이 부패하면서 악취를 뿜기 시작했고, 간간이 잡히는 붕어는 등이 휘어져 있었다. 1995년 건설교통부 '도시하천의 환경정비 기법 개발'문건은 '전주천이 심한 오염으로 고기가 살고 있는 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적었다. 그 전주천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 전주천 살리기

전주시의 첫 구상(98년)은 천변 공원화 사업이었다. 둔치를 따라 체육시설도 만들고 벤치도 두겠다는 것. 하지만 지역 시민·환경단체와 학계는 강을 우선 살려야 한다며 토를 달고 나섰고, 우여곡절 끝에 지자체장의 결단으로 민관협의회가 구성됐다. '자연형 하천' 조성사업 계획이 확정된 것은 2000년도에 들어서서다. 먼저 전주천 상·하류 하수관로를 정비하고, 차집관거를 매설했다. 보를 걷어내고 강 바닥에 여울과 소(沼)를 만들었다. 호안 콘크리트도 들어내고 자연석으로 돋웠다. 물이 돌에 부딪쳐 돌면서 포말을 만들고 산소가 녹아들자 수서곤충과 물풀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둔치에는 꽃창포와 갯버들 물억새 부들 등 수질정화 식물들을 심어나갔다. 도심 관통 7.2㎞ 구간에 걸쳐 120억원을 들인 공사였다.

주민들은 반신반의했고, 그래서 반대도 많았다. IMF 서리도 채 가시기 전이었던 터. "뭔 돈이 있어서…." "그 돈 있으면 소방서라도 하나 더…." "멀쩡한 강 벽은 왜 허물고 지랄이랴." 한 마디로 '헛돈 쓴다'는 거였다. 둔치 주차장도 난제였다. 천변 7군데 주차장 가운데 남부시장 인근 2곳을 제외한 5곳을 폐쇄하자 주민이고 시의원이고 모두들 종주먹을 쥐기 시작했다. "차를 이고 살라는 겨." "주차장 없으면 장시를 워찌 허라고." 민·관은 천변 25개 동을 돌며 두 차례씩 주민설명회를 여는 등 정성을 쏟았고, 주민들은 천에서 멱감고 천변에서 메뚜기를 잡게 해주겠다는, 믿기지 않는 약속에 홀려 못이긴 척 돌아서곤 했다고 시청 하수과 이도연 과장은 전했다.

전주천이 1급수로 부활한 것은 불과 2년 여 만이었다. 이제 쉬리 참종개 갈겨니 동사리 꺽지 등등이 상류에서 중류로, 중류에서 하류로 하루가 다르게 영역을 넓혀가며 새끼를 치고 있고, 천변 둔치에는 메뚜기 여치가 날뛰기 시작했다. 거짓말 같던 약속은 거짓말처럼 실현됐다.

# 전주천 지키기

누가 어디서 어떻게 전주천을 지키고 섰는지 천변에 나가보지 않고는 모른다고 했다. 천을 끼고 사는 주민들은 물론이고, 마라톤·사이클 등 각종 동호회, 1,600명 회원을 둔 새마을 부녀회가 모두 전주천 지킴이다. 푸른온고을21 김재병(35) 사무차장은 "생태 모니터링을 나가더라도 복장을 갖추지 않으면 고기 잡는다고 주민 신고가 들어갈 정도"라고 했고, 덕진구 자전거모니터링 봉사대 전영이 대장은 "요즘은 쓰레기 버리는 사람도 없고…, 봉사 핑계로 놀러 다니는 셈"이라며 웃었다. 새마을부녀회는 최근 폐식용유로 만든 무공해비누 판 돈으로 수생곤충 먹이생물인 다슬기 300㎏을 사다 전주천 일대에 방생했다. 전주시 연합회장 신종화(53)씨는 "상류 오목대에는 반딧불이도 있답디다. 반딧불이 유충이 다슬기를 먹고 사니까 한 여름 되면 전주천 일대가 반딧불이 천지가 될 것이요"라고 말했다.

26일 오전 완산초등학교 아이들이 천변 둔치에 모였다. 시민행동21 신진철(36) 팀장의 열띤 생태강의에도 아이들은 물에, 들꽃에 벌써 마음을 빼앗긴 눈치. 되살아난 강의 생명력을 귀보다는 몸으로 느끼고 싶은 게다. 신 팀장은 "최근 두 달간은 관내 초·중학교 생태학교가 주 7회씩 열리고 있다"고 했다.

내 아이가, 내 가족이 몸을 담근 냇가에 독물, 똥물을 흘려 보낼 이는 없을 터. 강에 몸을 담그는 일은 강을 몸으로 지키는 일이고, 아이들과 강은 공생하고 있었다. 회춘한 전주천은 아이들과 주민들과 살을 비비며, 강이 생겨난 이래 어쩌면 가장 에로틱한 자태로, 도심 복판을 흐르고 있었다.

/전주=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 최흥수기자

■"자연형 하천" 모델… "스스로 흐르도록 과잉보호 말았으면"

전주천은 '자연형 하천' 조성 붐의 주역이다. 이미 서울을 비롯, 전국 40여 개 지자체가 전주천 견학을 다녀갔고 자기네 하천 복원의 본보기로 삼고 있다.

그래도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전북대 생물과학부 김익수(61) 교수는 "천변 잡초가 보기 싫다고 잔디를 깔고, 생물들이 빨리 풍성해지라고 다슬기를 부어주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강은 제 살 길 찾아 스스로 흐르는데 사람이 들어 과잉보호에 나서는 일이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는 "조급증 버리고, 그냥 그대로 두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며 "다만 전주천 5개 보 가운데 2개를 없애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다. 푸른온고을21 김재병 사무차장은 "전주천을 중심에 두고, 산과 도심이 이어지는 생태 축을 구축해 전주가 생태도시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관이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시민행동21 신진철 팀장은 "자연형 하천이 유행처럼 인식돼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그는 "전주천이야 다행히 인근 용담댐 수몰지에서 자연석을 구해 썼지만, 타 지역은 그 돌들을 모두 산에서 캐올 것 아니냐"며 우려했다. 전주천에는 건강한 사공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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