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인수가 한창 진행되던 5월초 시작됐던 '나의 이력서' 가 어느새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휠라 코리아 시절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고, 요즘 사는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이력서를 마무리하고 싶다.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는 노사 문제다. 화물연대 파업을 시작으로 조흥은행 파업사태가 벌어졌고, 다시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예고하는 등 여기저기서 노조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웬만해서는 목소리를 내지 않던 재계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투자 중단, 생산기지 해외 이전 등 재계의 경고에 대해 오히려 경제위기를 부추긴다고 반박하는데,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위기감은 심각하다. 이러다가는 노사분규에 발목이 잡혀 한국 경제가 한발 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형국이 될 것 같다.
노조가 없어 노사분규가 일어날 걱정이 없는 우리 회사도 예외는 아니다. 휠라 코리아와 휠라 USA가 휠라 본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댔던 미국계 투자펀드 서버러스가 매일 같이 전화를 해서 한국 상황을 물어보곤 한다.
언론에 나오는 것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안심을 시키고 있지만, 솔직히 자고 일어나면 노사분규가 일어나는 나라에 마음 놓고 돈을 쏟아 부을 외국인이 있을까. 이래 가지고는 외국인 투자 유치는 커녕 있는 돈도 빠져나갈 판이다.
내 나름의 경험에 따르면 작금의 파업사태는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존경 받는 부자를 만들어내지 못한 우리 사회가 겪어야 할 과도기적 현상이다.
솔직히 오늘날 우리 사회에 존경 받는 부자가 있을까. 부동산 졸부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기업 경영인에게도 대부분 사람들은 부의 창출 과정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어떻게 벌었는가'보다는 '얼마를 벌었는가'가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부자들의 부의 축적 과정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스스로 소외감을 느꼈던 것이다.
결국 요즘 터져 나오는 파업 사태의 기저에는 상대적 박탈감과 피해의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 동안 부의 축적 과정이 정당하지 못했던 만큼 이제는 나도 그 몫을 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1997년 연봉이 18억원까지 치솟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자 주변에서는 오히려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돈 버는 것은 되도록 숨겨야 하는데, 자랑하는 바보도 있느냐"는 시각이었다.
아마도 돈 버는 대로 세금을 내면 바보라는 생각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돈 많이 번다고 자랑하면 손해라는 의식이 번진 것 같다. 2000년 내가 납세의 날 대통령상을 받았을 때 일각에서 오히려 뜨악한 시선을 보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휠라 코리아 직영점을 내려고 건물 임대를 하려고 하자 건물주가 대뜸 이런 제안을 했다. "보증금과 월세를 장부상에는 반으로만 기록하고, 나머지는 서류 없이 처리합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닙니까."
나는 "내가 도둑놈이 될 수는 없다"는 말로 딱 잘라 거절했다. 노력 없이 쉽게 돈을 버는 사람이야말로 도둑놈이다. 이런 사회에서 내가 돈을 많이 번다고 자랑하는 것이 바보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정당하고 건강한 부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부자가 존경 받는 사회가 될 것이다. 한마디로 '청부(淸富)'가 많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노사분규도 점차 사그러들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누구보다 떳떳하다. 나는 지금까지 적당히 일한적도 없고, 요행을 바란 적도 없다. 또 다른 사람을 이용한 적도 없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일했을 뿐이다. 또 과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지, 목적을 탐하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도 내가 받는 연봉 액수를 자랑스럽게 밝힐 생각이다. 나는 꿈꾼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보람이 돌아오고, 자신이 돈 많이 벌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청부의 사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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