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표어를 내걸고 철도청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다. 27일 밤 연세대 대강당에 집결한 4,000 여명의 노조원들은 너도 나도 표어가 적힌 붉은 플래카드를 흔들며 전의를 다졌다.철도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고? 철도에서 일해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그것은 언론 노조가 파업을 하며 "신문 방송을 멈춰 세상을 바꾸자"고 말하는 것과 같다. 좀 더 심한 예를 들자면 교사들이 파업하며 "학교 문을 닫아 세상을 바꾸자"고 말하는 것과 같다.
파업의 결과로 철도가 멈추고 신문 방송이 멈추고 학교수업이 중단될 수는 있다.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것이 파업의 가장 큰 무기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기일 뿐 투쟁의 목표일 수는 없다. 멈추는 것은 자기 직업의 존재이유를 부인하고 훼손하는 것이다.
택시도 아닌 철도를 멈추자니 무슨 막 말인가. 달구지타고 다니는 세상으로 바꾸겠다는 건가. 철도는 국민의 발이고, 국토의 혈관이고, 철도 노조원들의 밥을 먹여주는 신성한 일터다. 아무리 파업 중이라지만 할 말이 따로 있다. 단지 '말실수'였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말실수가 가능한 노동운동의 분위기가 문제다. 오늘의 노조 투쟁은 브레이크 없이 과속으로 달리는 열차 같다.
노조의 집단행동에 대해서 국민은 오래 참았다. 경제고도성장기에 노동자들이 흘린 땀과 눈물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재벌이 눈부시게 형성되던 기간에 근로자들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동생들의 학비를 대고, 열악한 작업환경에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그러나 오늘의 노조는 그들을 대변할 수 없고 동일시 될 수도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정부가 노동자들의 자율권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제공한 반대급부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자율권을 갖고 활동할 자유가 주어졌으니 특혜도 해소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또 얼마 전 "대기업 노조들이 이기주의에 빠져 도덕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말도 했다.
많은 국민이 대통령의 말에 동감하고 있다. 노조는 이제 경제발전의 견인차가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국내외에 확산되고 있다. 한국 노조의 '전투적인 투쟁'과 극단적인 노사대립은 해외 기업들이 한국 진출을 꺼리는 가장 큰 요인이다. 국내에서도 경제단체가 나서서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기업하기 위해 해외로 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할 정도다.
80년대에 한 조선소 노조가 파업을 하면서 "도크에 풀이 날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한국노동운동사에 남을만한 극단적인 막 말이다. 도크에 풀이 날 정도면 회사고 노조고 끝장이다. 조선업이 끝장날 때까지 싸우면 어떻게 되나. 경쟁국만 득을 보게 된다.
노조가 정부 통제에 맞서 저항하기 시작한 80년대로부터20여년이 흘렀는데, 노조의 투쟁방식이나 의식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도크에 풀이 날 때까지"나 "철도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 나 큰 차이가 없다.
노조 파업에 대한 여론이 얼마나 나쁜지 알아보려면 택시를 타면 된다. 철도 노조건 다른 어떤 노조건 택시기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바란다.
"먹고 살 만큼 월급 받고, 힘도 쓸 만큼 쓰는 노조가 더 요구가 많고 강성이다. 정말 투쟁이 필요한 근로자들은 대기업 공기업 노조의 파업으로 경기가 더 나빠질까 벌벌 떨고 있다. 대기업 노조는 이미 노조가 아니다." 택시 기사들은 십중팔구 험악한 욕설까지 퍼부을 것이다.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내놓은 '2003년 세계경쟁력 연감'을 보면 한국의 노사관계 경쟁력은 30위로 인구 2,000만 이상 30개국 중 최하위다. 1위는 일본이 차지했다.
윤리의식은 경영자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노조도 이제 역사 속에서, 또 현실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고 힘에 맞먹는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갖춰야 한다. 정부도 확고한 노동정책을 밀고가야 한다. 노 대통령은 '노동자특혜 해소' 발언에 대해 "구체적인 정책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는데, 그렇게 물러설 게 아니라 정책 변화를 서둘러야 한다. 생산성이 낮고 국민이 외면하는 노조는 미래가 없고, 우리 경제의 미래도 흔들리게 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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