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002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 당시 한국인 단장이 이끄는 중국의 '치우미 응원단'이 대거 한국을 찾았다. 비록 중국 대표팀의 성적이 부진하기는 했지만, 끝까지 성원을 아끼지 않은 이들의 모습은 세계 축구인들에게 한국의 '붉은 악마' 못지않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치우미(球迷)'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공에 푹 빠진 사람들', 즉 구기 종목의 열성 팬을 뜻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흔히 축구 팬을 가리키는 말로 통한다.
중국 TV에 넘쳐 나는 축구 전문 프로그램도 이런 축구 열기를 반영한다. CCTV만 보더라도 '주치우즈예(足球之夜·축구의 밤)', '텐샤주치우(天下足球·천하축구)', '주치우차이빠오(足球彩報·축구복표 보도)' 등을 방송한다. 특히 해외 각국의 축구 경기 소식을 주로 전하는 '텐샤주치우'는 17일 시청점유율 25.03%를 기록, CCTV의 스포츠 채널인 제 5채널에서 1위를 차지했다.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성(省)과 주요 도시 방송국도 대부분 한, 두 개의 축구 전문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고, 축구 열기가 높은 다롄(大蓮) 방송국은 축구 채널을 따로 두고 있을 정도다.
최근 중국의 최대 포털 사이트인 시나닷컴(www.sina.com)이 실시한 '가장 좋아하는 방송 프로그램' 설문 조사에서도 시사, 문화·예술, 토크쇼 등과 함께 축구 프로가 한 몫을 차지했다. 최고의 축구 프로로 선정된 CCTV의 '주치우즈예'는 중국 국내와 해외 축구 소식을 각각 절반씩 전한다. 중국 축구 팬들의 관심은 그만큼 '국제화'해 있다. 특히 올해는 '사스' 여파로 7월2일에야 중국 프로 경기가 다시 시작되기 때문에 '치우미'들의 눈길은 줄곧 컨페더레이션스컵과 유로2004 예선에 쏠려 있었다. 방송국들은 주요 경기를 중계 방송했고, 새벽에 이를 보느라 밤잠을 설친 팬들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출근했다.
물론 축구 열기에 비하면 중국 축구팀의 실력은 저조하다. 갑A조 15개 팀, 갑B조 14개 팀으로 나뉜 프로 팀은 구단별로 많은 팬들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아직 국제 무대에서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A매치에서 패전할 때마다 팬들은 "다시는 안 보겠다"고 맹세하고 또 맹세하지만, 축구 프로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TV 앞에 다시 모인다.
야구를 '자본주의 스포츠'로 여겨 배척해온 탓에 축구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외치는 '치우미'들의 못 말리는 축구 사랑 덕에 중국 축구의 앞날은 밝아 보인다.
/이재민·중국 베이징대 박사과정(중국 매체 및 문화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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