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선 지음 마음산책 발행·1만1,000원어느날 아들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어바웃 어 보이'.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홀로 아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에 잔뜩 겁먹었을 무렵이었다. 영화는 이혼한 여자가 혼자서 아들을 키우는 이야기였다. 영화에서 어머니가 아주 큰 빵을 오리에게 먹으라고 던졌는데, 오리가 빵에 맞아 죽었다. 그 여자와 자신의 모습이 너무 닮아서 슬퍼졌다. 왜 울고 있느냐고 물어보는 아들에게 소리치는 어머니. 그럼 남편이 죽었는데 우는 게 당연하지! 또 어느날 메신저에서 아들이 말했다. 나 자살하고 싶어. 그래? 그럼 해라. 너 죽어도 나는 안 죽어. 나는 너 때문에 살지 않고 나 때문에 살아! 며칠 뒤 아들이 메일을 보냈다. "이제 됐다."
화가 김점선(57)씨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사람은 아니다. 그는 화가다. 그러나 그의 글은 누구 못지않게 개성적이다. 그는 글에 예쁜 옷을 입히지 않고, 매우 거친 알몸의 생각을 내보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사실 그의 그림은 오래 전부터 그러했다.
에세이 '나는 성인용이야'는 '김점선 표 글과 그림 모음'이다. 글도, 그림도 모두 컴퓨터로 작업한 것들이다. 사다리를 놓고 대작을 그리는 것이 꿈이었는데 어느날 오십견이 왔다. 아들이 사다 준 노트북이 김씨의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 '나는 성인용이야'에 실은, 1월부터 12월까지 48장의 화투 그림은 김씨가 컴퓨터로 그린 것이다. 고스톱을 치다가도 목단, 청단 그림이 들어오면 너무 예뻐서 내놓기 싫다는 그다. 화투는 '오염되고 천박한 것'이라는 일반의 인식을 거침없이 치워버리고, 화투 그림에 '민중미술' '팝아트'라는 새로운 개념을 붙여 준다. 편견을 뛰어넘는 앙데팡당(independent)은 손가락 가는 대로 키보드를 두들기는 글쓰기에서도 불꽃처럼 타오른다. 뜨겁고 강렬하다. "혼자서 심심하게 살아야 생각이 맑아지고 그림을 그리게 된다. 심심해서 몸이 비틀려야 그림이나 그려볼까 하고 새로운 생각에 잠기게 된다. 재미있게 지내고 나면 구역질이 난다. 같이 재미있던 모든 사람에 구역질을 느끼면서 증오한다."
직접 머리카락을 자르고 어릴 때 아들이 입던 옷, 남편이 남기고 간 옷을 입고 다니는 그. 좋고 큰 건물에 들어가려 할 때마다 차림새 때문에 언제나 팔뚝이 잡혀 끌려 나와야 했던 그.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종로경찰서 유치장에 꼬박 하룻밤을 갇혀 있었다는 그. 온몸을 다해 그림을 그릴 때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영혼의 추구'를 느끼는 그. 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느냐는 물음에, 명성 때문이 아니냐는 물음에 "말이나 되는 소리를 하라!"고 꽥 소리를 지른다. "나는 기아 선상에서 허덕이는 절박한 예술가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그림 그리고 글 쓴다. 항상 영양 결핍에 시달린다." 그는 자신을 그림 그리는 육체노동자라고, '글 영역 확대작업 노동자'라고 부른다. 언어를 마음대로 찢어발기고 파괴함으로써 언어에 힘을 부여한다. 그것은 그의 미술 작업의 정신과 다르지 않다.
어린 친구와 메신저로 대화를 하다가 차단했다.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났다. "왜 차단했어요? 풀어주세요." "안돼, 나는 성인용이야." "그게 무슨 뜻이에요 ?" "나는 위험하단 말야. 나는 횡설수설하는데 그건 너희들에게 도움이 안 된단 말야. 나는 조금은 문제적인 어른이잖아. 본받을 만큼 규범적이거나 훌륭하진 않잖아." 그 말이 맞다. 그는 '문제적 어른'이다. 그의 글과 그림이 기성관념에 대한 투쟁과 전복이기에 그러하다. 이 글을 읽고 어딘가 불편하다면 우리 마음이 통념과 타성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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