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파작 지음·이재룡 옮김 현대문학 발행·2만9,000원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가 정신을 놓은 것은 토리노에서였다. 1889년 1월 초 그의 머리는 몸보다 먼저 죽었으며, 10여 년 뒤 몸이 따랐다. 체사레 파베세(1908∼1950)가 자살한 것은 토리노에서였다. 프랑스 작가 프레데릭 파작(48)은 1994년 10월17일 토리노로 갔다. "토리노를 보고 난 뒤, 나는 토리노가 되었다. 그 뒤로 예전처럼 잠들지 못했다."
'거대한 고독'은 프레데릭 파작이 토리노 하늘 아래서 만난 두 명의 고독했던 거인의 이야기다. 토리노는 위대한 철학자였으며 죽기 전 10년 간 정신병자였던 니체, 현실도피적 문학을 온몸으로 거부했으며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탈리아 시인 파베세를 묶어주는 곳이다. 이 도시에서 작가는 천재들의 절규를 들었으며,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쓰기로 결심했다.
토리노로 갔을 때 니체는 혼자였다. "우리가 아는 한도 내에서 이 세계란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고유한 신경활동에 불과하다.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라는 비관적인 기록을 남겼을 무렵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토리노가 자신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느꼈다. 눈과 뇌가 편안해지는 곳, 아무리 무거운 생각에도 날개를 달아주는 곳. 그는 그곳에서 '바그너의 경우'와 '이 사람을 보라'를 집필했다.
파베세에게 토리노는 가혹했다. 사랑이 그의 마음을 찢어놓았다. 어떤 여자도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절망감에 빠졌다. 그는 끊임없이 광기와 자살의 충동을 느꼈다. "우리 시대에 자살이란 사라지는 방식 중 하나이며 사람들은 수줍게, 조용히, 무덤덤하게 자살을 한다. 그것은 더 이상 행동이 아니고 괴로움일 뿐이다." 화려하고 우울한 도시 한복판에서 낙천적 자살이 나타날지 누가 알겠느냐며 감수성 예민한 시인은 쓸쓸하게 웃었다.
니체의 정신의 마지막. 겨울 어느날 집 밖으로 나온 그는 마부에게 호되게 얻어맞는 말의 목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다가 뇌일혈로 쓰러졌다. 더 이상 온전해질 수 없었다. 파베세의 마지막. 그는 어느날 저녁 자신이 알고 지내던 여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식사 초대를 했다. 모두에게 거절당하고, 심지어 한 여자에게선 '당신은 성질도 나쁘고 지루해요'라는 말까지 들었다. "사랑, 위대한 사랑,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것을 원했다. 헛수고였다." 그는 그날 밤 자살했다. 작가 파작은 진지한 사유를 통해 한 문장 한 문장을 건져올린다. 화가이기도 한 그는 그림 그리기를 함께 한다. 그의 그림 속 모든 사람의 얼굴은 긴 코를 갖고 있다. 길고 크고 두꺼운 코를 가진 사람들은 낯설고 우울해 보인다. 파베세가 남긴 글이 파작의 기이한 작업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누구와 대화하든 간에 나는 나의 진정한 얼굴일 법한 것을 가리고 그 사람의 고유한 약점에 적합한 얼굴 표정을 취한다. 그러다 보니 진짜 내 얼굴이 어떤 것인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설령 그런 것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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