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 이희재 옮김 푸른숲 발행·1만 3,000원1994년 고려원미디어에서 나온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세계 지리'를 무척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지리는 알지도 못하는 여러 나라 수도 이름이나 외우고,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지역의 특산물 종류를 꿰는 지겨운 과목쯤으로 여겼을 이들에게 멋진 신세계를 보여줬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어떻게 생겼고, 어디에 누가 어떻게 살고 있으며, 지리상의 발견이나 지리 관련 과학적 연구 성과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는지, 각 지역은 어떤 역사와 내력을 갖고 있는지 종횡무진 내달리며 설명하는 솜씨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지금은 절판돼 구할 수 없게 된 이 책이 푸른숲 출판사에서 '지오그래피'(Geography·지리)라는 새 제목으로 나왔다. 일단 반가운 마음에 책을 펼친다. 예전에 느꼈던 재미가 새삼스럽다. 재미와 교양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이 책의 가치는 9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이다. 최초의 지도는 누가 만들었나? 뛰어난 항해술을 지녔던 아랍인들은 왜 신대륙을 발견하지 못했나? 사해(死海)는 누가 죽였나? 얼음으로 뒤덮인 땅에 왜 그린란드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아프리카는 왜 '검은 대륙'으로 불리나? 북극이 추운가, 남극이 추운가? 지은이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런 질문으로 독자를 유혹한 다음 적절한 유머를 섞어가며 명쾌한 설명을 들려준다.
이 책에는 단순히 세계 지리 뿐 아니라 세계사, 국제정치, 경제, 지질학, 기상학, 생태학, 나아가 천문학의 알맹이까지 간추려져 있다. "지리는 모든 학문의 주맥(主脈)이며 거기에서 온갖 학문과 과학이 방사상으로 뻗어나오는 중심"이라고 믿는 사람답게 지은이는 지리를 중심으로 놀라운 박학다식과 전방위적 조망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지리학자와 탐험가들의 생생한 기록을 담은 '지리적 발언', 인류의 세계관과 세계 자체를 변화시킨 지리적 발견·발전·발명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한 '지리학의 이정표'도 본문 곳곳에 보너스처럼 박혀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더욱 미더운 것은 근대 이후 역사와 지리 발달 과정에서 홀로 공을 독차지해 온 서구의 오만과 횡포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화상대주의적 시각이다. 이를테면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처음 발견했다는 통설에 대해 콜럼버스가 오기 전부터 그곳에 사람이 살았는데, 발견이라니 무슨 소리냐고 반박한다.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으로 부르는 것은 유럽인들이 만들어낸 식민주의의 유산일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1200년대부터 200년간 이슬람권의 종교 및 무역 중심지로 번영을 구가한 아프리카 내륙의 말리 제국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말리 제국의 존재와 영광은 중세 아랍인들이 잘 알고 있던 바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지리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던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 동안 서구 중심으로 이뤄져 온 지리적 사고의 편향성을 바로잡는 균형추이기도 하다.
절판된 책을 다시 펴내면서, 출판사는 1992년 원서 초판 이후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을 '지리학의 이정표'에 추가하고, 그동안 바뀐 나라 이름을 고쳐 실었다. 단 고려원 판에 붙어있던 찾아보기를 뺀 것은 아쉽다.
지적 호기심이 넘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즐거운 독서물이다. 전에는 미처 몰랐던 사실이나 무심코 지나쳤을 편견을 깨달으며 머리 속이 환해지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두고두고 읽을 만한 지리교양서로 강력히 추천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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