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라이 지음·전병욱 옮김 예문서원 발행·3만원중국 고전철학에서 유(有)와 무(無)의 양단 논쟁은 언제나 식을 줄 모른다. 유·불·도로 대표되는 중국 사상의 발전 과정에서 이 두 개념은 밀고 당기는 긴장을 유지하거나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사상사 전체로 봤을 때는 원만한 단계의 융합이나 통일보다 상호 부정적인 쟁론이 대종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불교와 도가의 도전을 받아온 중국 송·명대 신유가(新儒家)는 이 양단을 어떻게 융합할 것인가를 과제로 안았다. 이 책의 원저 제목 '유무지경(有無之境)'은 이런 양명학의 탄생 배경을 압축한 것이다. 유와 무가 하나의 통일된 경지에 이르는 학문을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왕양명(1472∼1528) 시대는 이미 존재론적인 본체의 유·무 문제가 이성주의와 함께 퇴색해 버린 시기였다. 양명철학은 객관적 진리가 무엇이냐를 마음 밖에서 찾는 이성주의 성향보다 도덕의 주체성을 고양하면서 '마음밖에는 이가 없다'(心外無理) '양지를 완전히 실현하라'(致極良知) '인자는 만물과 동체'(仁者與萬物同體)라는 주장을 통해 유가의 고유한 '유'의 경지를 궁극적 단계까지 확장했다. 또 유가의 입장에서 불·도가의 실존적 지혜를 흡수해 유아(有我)의 경지와 무아(無我)의 경지를 결합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양명은 북송(北宋) 이후 추구해 온 유가의 입세간(入世間)의 가치 이성을 견지하면서 불가와 도가의 정신 경지와 정신 수양을 흡수하려는 노력을 실존적 체험을 통해 완성했다.
이 책은 각종 사료 분석을 통해 양명의 심리 상태와 배경을 세밀히 추적한 점이 신선하고 이채롭다. 저자인 베이징(北京)대 천라이(陳來·51) 교수는 양명의 심학이 주자학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주자학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시작했다는 기존 학계의 시각을 반박한다. 또 명학은 단지 주자학과 동일한 사고의 패러다임 속에서의 발상의 전환일 뿐이라는 해석을 넘어 '유무지경'을 통한 신유학의 새로운 심학 전통을 구축하려고 했다고 본 데도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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