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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코끼리를 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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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코끼리를 쏘다

입력
2003.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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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지음·박경서 엮어 옮김 실천문학사 발행·1만2,000원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철두철미 공산주의에 반대한 반공 작가로 각인돼 있었다. 영미 문학권의 정치 풍자소설로는 '걸리버 여행기' 이후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는 '동물농장'(1945년)은 별로 풍자랄 것도 없이 노골적으로 스탈린주의를 비판해 성가를 얻은 소설이다. 폐렴으로 숨지기 1년 전에 완성돼 '동물농장'보다 더 긴 생명을 누리고 있는 '1984년'(1949년) 역시 전체주의를 고발한 것이다.

탄생 100주년(6월25일)을 맞아 오웰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교정할 만한 책들이 국내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최근 낸 오웰 평전 '조지 오웰―자유 자연 반권력의 정신'(이학사 발행)이 하나이고, 국내에선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설보다 훨씬 많은 분량이 남아 있는 오웰의 산문 25편을 골라 모은 이 책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이 산문선집은 박 교수의 지적대로 "공산주의는 물론 자본주의도 부정하고 진정한 자유주의를 추구했던" 오웰의 면모를 십분 드러내 준다. 게다가 식민지에서 근무한 제국주의 영국의 경찰로, 유럽의 빈민으로 살며 오웰이 보고 느꼈던 사회의 모순, 인간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엿볼 수 있다. 문학의 '참여'를 주장했던 그가 글을 쓰는 이유도 담겨 있다.

오웰은 정치적 목적을 갖지 않는 문학에는 생명이 없다고 썼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글을 쓰는 동기 중 어떤 것이 나에게 가장 강하게 작용했는지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이들 중 어떤 것을 추구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돌이켜보건대, 정치적 목적이 결여된 곳에서 내가 한결같이 화려한 문체, 의미 없는 문장, 쓸모없는 장식적 형용사 등에 유혹당한 생명 없는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나는 왜 쓰는가')

그러면 그의 정치적 목적은 무엇인가. 반공일까?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일까? 오웰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글쓰기가 이런 나침반을 갖게 된 것은 군국주의와 사회주의의 정면 충돌로 요약할 수 있는 스페인 내전(1936∼39)과 비슷한 시기 스탈린의 숙청 이후이다. 오웰은 군국주의건 공산주의건 전체주의로 인간성을 말살하는 체제에 거부감을 표시했던 것이고, 이념으로 따지자면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쪽이었다.

오웰은 늘 낡은 스웨터나 셔츠에 꼭 끼는 재킷을 입은 노동자 차림으로 꼭 직접 만 담배만 피웠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얼굴에 추호의 감정 표현도, 주변에 친구도 없던 매우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전업 작가로 나서기 전까지 식민지 버마(현 미얀마)에서 경찰 노릇을 할 때의 체험을 적은 산문은 그가 인간 차별의 모순을 얼마나 절절히 느끼고 있었던가 보여준다.

오웰은 사형장으로 가는 원주민 죄수가 곧 처형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 신발이 물에 젖지 않도록 발걸음을 옆으로 옮기는 것을 보면서('교수형') '그와 우리는 함께 걷고 똑 같은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하는 일행'이라고 썼다. 표제 산문 역시 버마의 경험이다. 난동을 부리다가 잠잠해진 코끼리 앞에서 꼭 죽여야 할 이유가 없는 데도 현지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총을 집어 들었던 상황을 겪으며 그는 '나를 위시해 동양에 와 있는 모든 백인들의 생활은 원주민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라고 느꼈다.

사회주의를 잘 알지도 못하고 정치적으로 순진한 작가에 불과했으며, 유대인을 차별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어쨌든 오웰은 반공 극우 보수주의자들이 자신의 이념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삼아야 할 이유가 없는 작가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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