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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투수를 망치는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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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투수를 망치는 조건

입력
2003.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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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포츠팬들 사이에 서재응(뉴욕 메츠)이라는 미 메이저리그의 한국인투수가 단연 화제다. 덩치 크고 힘이 장사인 거포들을 상대로 벌써 5승을 올리고 있고 준수한 외모까지 갖춰 대스타가 될 떡잎이라는 얘기도 나돈다. 황색인종 칭찬에 인색한 미국 언론들까지 나서 "올 시즌이 그의 것이 되고 있다" "신예(kid)가 역사를 만들고 있다"며 칭찬릴레이를 펼치고 있을 정도다.이젠 반쯤 떠오른 별이 됐지만 그의 삶 역시 요철이 심했다. 잘 나가던 국가대표 투수에 만족하지 않고 97년말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메이저리그의 장벽은 의외로 높았다.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이듬해 여름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올라섰지만 곧바로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는 '악순환'을 거듭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지나쳐서였을까. 급기야는 투수에게는 생명이나 다름없는 오른팔 인대가 갈기 갈기 찢겨나가는 참화를 입는다. 그는 당시를 "삶에 대한 최소한의 집착 마저 놓을 뻔 했지만, 공만은 계속 던지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결국 왼팔의 인대를 오른팔에 이식하는 대수술을 받았고, 이후 2년여동안 재활의 몸부림을 쳐야 했다. 그러나 재활과정은 그에게 오히려 약이 됐다.

서재응은 본래 시속 150㎞를 넘나드는 강속구투수였다. 국내에서는 타자들을 스피드만으로 요리할 수 있었지만 미국 진출 후에는 두들겨맞기 일쑤였다. 볼만 빠른 투수였기 때문이다. 수술 후에도 강속구를 고집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구단측은 고심 끝에 "스피드를 포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서재응도 생존을 위해 이를 충실히 따랐다. 이 때부터 진짜 투수훈련이 시작됐다. 볼을 던지기만 하는(throw) 단계에서 공을 조절하면서 투구(pitch)하는 관리자로 변신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고, 그 훈련이 요즘의 서재응을 가능하게 했다. 이제 그는 구단과 언론이 "자로 잰 듯 타자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제구력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추켜세울 정도가 됐다.

야구선수 얘기를 장황하게 나열한 건 이 나라 핵심부의 돌아가는 형국이 아직까지도 그의 초창기 투구모습과 빼 닮았기 때문이다. 물론 빠른 직구는 투수의 덕목 중 하나다. 때로는 정면승부도 필요하다. 그러나 공이 아무리 빨라도 정직하게 가운데로 들어오면 왠만한 타자면 어렵지 않게 쳐낼 수 있다. 반대로 상황에 따라 필요한 곳에 공을 던질 수 있는 제구력과 절제심을 갖춘 투수는 공포의 대상이다. 최고통치자를 위시한 핵심 멤버들은 줄곧 그들의 습성대로 밋밋한 직구를 던지는 데 만 몰입해 왔다. 그 직구는 그들의 과거사에서 비롯된 운동권 기질과 비현실적인 원칙론에 근거한다. 불행하게도 결과는 늘 실망적이었다.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타자가 있는 상황에서 노조편 만을 드는 직구를 던졌다가 연쇄파업이라는 홈런포를 유발했다. 뒤늦게 제구력에 신경을 쓰면서 노동계에 으름장을 놓았지만 이미 실점한 뒤였다. 몇몇 언론을 편애한 고집불통식 직구는 국가기밀 유출이라는 어이없는 장거리포로 되돌아왔다.

대통령은 야구선수로 치면 에이스투수다. 제2, 제3선발 투수가 누군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들에게도 역시 제구력이 최고의 덕목이다. 이들은 수많은 이익단체, 정치인, 그리고 힘센 다른 나라 사람들을 상대한다. 그런 상황에서 과거의 추억에 젖은 직구만을 고집하다가는 실점은 쌓여만 가고 관중들은 우울하고 불행해진다. 서재응이 내일(28일) 오전 등판한다. 이 나라 '투수들'이 그가 어떤 제구력과 절제심으로 타자들을 상대하는 지 지켜보면 어떨까.

김 동 영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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