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비서실이 흔들리고 있다. 노조의 파상적 투쟁과 파업으로 뒤숭숭한 마당에 중심을 굳건히 잡고 있어야 할 청와대 비서실이 연일 뉴스거리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국정원 고위간부들의 모습이 실린 사진을 인터넷 신문에 유출해 전속사진사가 면직 당하는 일이 있더니, 소방헬기를 타고 가족들과 새만금 현장을 시찰한 비서관 세 명이 물러나고 말았다. 거슬러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방문 중 직접 건 전화를 받지 않은 일, 그리고 5·18 광주민주항쟁 기념식 때 한총련의 시위로 정문으로 출입할 수 없었던 일도 겹쳐 떠오른다.
다른 곳도 아닌 청와대 비서실의 기강이 해이되어 있다면 이는 심각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는데 가장 중추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비서실은 대통령의 분신과 같아 종종 대통령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따라서 비서실장 이하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직무에 임해야 한다. 가장 민감한 국정관련 고급정보를 다루는 곳이기에 철저한 보안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함은 물론 누구보다도 밑바닥 민심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국민을 섬기는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선거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이 점령군처럼 진입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행정부처에 가감 없이 전달하기 위해서는 소위 코드(code)가 맞는 사람들이 비서실을 채우는 것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거운동을 하던 자세로 업무를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국정스타일이 후보시절과는 달라야 하는 것처럼 보좌진도 새로운 행동양식을 익혀야 한다.
비서실은 국정을 앞장서 추진하는 집단이 아니다. 국정운영을 운동차원으로 인식해 국민을 동원하여 과반수의 찬성을 이끌어 내는데 일차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면 그것은 선거운동과 국정운영을 구별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비서실의 주된 기능은 기획과 조정이며, 행정부와 대통령을 이어주는 연계 기능이 또한 중요하다. 따라서 고도의 균형감각이 필요한 곳이다. 과거 정부에서도 정부 출범 이후 관료출신의 청와대 직원과 정치권에서 수혈된 직원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있었으나, 상호 대화를 통해 서로의 시각과 관행을 정립해왔다. 대통령과의 코드가 중요한 만큼 비서실 구성원간의 코드(chord), 즉 상호배려를 통한 조화가 중요하다. 한 발 더 나아가 행정부와 야당 그리고 언론과도 화음을 맞출 수 있는 비서실이 되어야 한다.
그간의 여러 문제들이 공직경험의 부족에서 불거진 것이라면 조속히 학습을 통해 시정해 나가야 한다. 아마추어 청와대를 벗어나 프로페셔널 청와대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행정관료 출신의 청와대 직원들도 이 학습과정에 동참하여 그들의 경험을 나누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모두 한 식구이기 때문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직원들, 구체적으로 내년 4월 총선 출마에 뜻이 있어 맡은 직무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있는 비서실 직원들은 즉시 청와대를 떠나는 것이 좋겠다. 애초부터 총선을 위해 청와대 비서실 직원이었다는 이력서가 필요했던 사람들에게는 이미 타이틀은 얻은 것이 아닌가. 공연히 청와대에 남아 주위 직원들을 들뜬 분위기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
노 대통령 역시 비서실이 단순히 보좌기능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분신, 동시에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거울로 삼아 그들의 실수를 함께 자성해야 한다. 대통령 자신으로 인해 그들의 기강이 해이된 점은 없는지, 그들과의 코드만을 강조한 나머지 합리적 견제와 따가운 질책의 목소리가 청와대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 정 희 한국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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