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변화'보다는 '강한 리더십'을 선택했다.26일 최병렬 대표가 당선된 것은 당의 보수 정체성 확립과 단합으로 강력한 대여(對與)관계 정립을 원하는 세력의 승리로 볼 수 있다. 노동부·공보처 장관과 서울시장 등을 역임하고 한나라당 수석 부총재를 지내면서 검증된 그의 확고한 보수성과 추진력이 평가를 받은 것이다. 최근의 '총체적 국정 혼란' 양상과 대북 송금 특검법 등을 둘러싸고 여권과 가파른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권을 힘으로 압도할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게 선거인단의 판단이었다.
이런 가운데 두번의 대선패배를 자성하는, 당 개혁과 세대교체의 목소리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당의 변화를 외친 강재섭 김덕룡 후보가 당권 레이스 내내 최 대표와 서청원 후보 등이 형성한 선두권을 한번도 위협하지 못하고 각각 3, 4위로 주저앉은 것도 그래서다.
따라서 앞으로의 정국은 '강(强)대 강'으로 여야가 맞부딪히는 대결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최 대표는 후보 합동연설회에서 "도울 것은 돕겠지만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궁해 대통령과 여당을 무릎 꿇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는 또 "국회의 원칙은 다수결인 만큼 무원칙한 타협은 더 이상 없다"며 원내 과반의석을 앞세운 국회운영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최 대표는 당내적으로 결코 쉽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탈당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일부 개혁파 의원은 물론, 경선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서청원 강재섭 김덕룡 의원 등 낙선 후보에 대한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첫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또한 최 대표는 "당을 획기적으로 쇄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실적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번 경선에서 그의 핵심 지지기반은 부산·경남 등 영남권과 보수파 중진이었다. 이른바 당내 기득권 세력이다. 최 대표가 당의 노쇠·수구 이미지 타파, 17대 총선 물갈이 공천 등 각종 개혁의 대상일 수도 있는 이들과의 이해관계에 과연 초연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직선 대표이면서도, 원내총무와 정책위의장 권한의 대폭 강화로 과거 이회창 전 총재와 같은 권한행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도 개혁 드라이브의 장애가 될 수 있다.
결국 최 대표가 이 같은 당권 분점구도 속에 새로운 유형의 리더십을 창출하는 한편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인적 쇄신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최병렬 체제'의 순항은 물론 당의 내년 총선승리도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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