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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림]헌책 동호회 "숨어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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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림]헌책 동호회 "숨어있는 책"

입력
2003.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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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5시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헌책 방 대양서점. 유진상가에서 독립문 방향으로 100m 남짓 지난 주택가 2층에 한갓지게 자리잡은 18평짜리 책방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서로 인사하고 반기는 모양이 여간 잘 알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다. 토요일인 이날은 헌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숨어있는 책'의 바깥모임이 열리는 날이다. 인터넷 동호회((home.freechal.com/booklover) 회원들이 한 달에 한 번 얼굴을 마주하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 평소보다 일찍 사람들이 모여들어 책 구경하고, 안부를 묻느라 서점 안에 금세 화기가 돌았다. 6시를 조금 넘길 때까지 10여 명의 회원이 모였다."헌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일반 책방에도 남들보다 자주 갑니다. 책을 좋아하고 책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굳이 헌책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다기보다는 헌책을 매개로 책 이야기를 나누려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야 할 겁니다."(숨어있는 책 3기 회장 김민성) "헌 책을 모으는 건 숨어있는 세상의 반쪽을 보는 겁니다.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를 일부러 거스르며 중심을 잡으려고 하는, 거꾸로 사는 재미를 즐기는 거죠."(2기 회장 조희봉)

헌책을 사랑하는 인터넷 동호회는 '숨어있는 책' 말고도 이름 난 곳이 몇 군데가 더 있다. 회원 수로 따지자면 430여 명인 '숨어있는 책'보다 1,400명이 넘는 '함께살기'가 더 많다. 홈페이지 구색도 '함께살기'나 '헌책방 사랑누리'가 나아 보인다.

하지만 '숨어있는 책'은 2000년을 전후해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 통신에 개설됐던 각양각색의 동호회가 인터넷으로 자리를 옮기던 중에 헌책 동호인 모임으로는 처음 만들어진 '역사성'을 자랑한다. 나우누리에서 활동하던 김민성(28·학생)씨가 2000년 7월 포털사이트 프리챌에 신촌의 헌책 방 이름을 따서 개설한 게 출발점이다. 홈페이지가 생기자마자 천리안과 나우누리 등에서 활동하던 헌책 애호가 50명이 바로 가입했다. 이들이 '창단 동지'들이다.

"이미 절판된 책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서울에만 헌책 방이 100군데를 넘습니다. 전국을 다하면 아마 200군데는 넘을 겁니다. 헌책 동호회는 필요한 옛날 책과 책방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곳입니다." 김민성씨가 말하는 헌책 방은 서울 청계천이나 부산 보수동 헌책 방 밀집지역은 하나로 센 것이다.

필요한 책을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은 헌책 사랑 모임에서 얻을 수 있는 큰 소득이다. 대양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회원 정태영(30)씨는 헌책 방마다 다르고, 같은 책이라도 판매 당시 수급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신간의 경우 "정가의 50∼60%에 내놓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헌책이라고 언제나 싼 것은 아니다. 최근 소설가 이문구씨가 작고한 직후 '관촌수필' 초판 본은 정가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팔렸다. 서양문학사의 가치로 셰익스피어, 단테, 세르반테스에 버금 간다는 16세기 프랑스 작가 라블레의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1970년대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 번역본이 절판된 뒤 재번역이 없어 정가 2,850원의 헌 책이 1만원을 호가한다.

그렇다고 싼 값으로 책이나 사고 책 정보만 캐자고 헌 책방을 찾고, 모임을 갖는 건 아니다. 자신의 독서·헌책 수집 이야기를 모아 1월 '전작주의자의 꿈'이라는 책을 내 화제가 된 조희봉(32)씨의 말처럼 이들은 헌책에서 "세상을 건너는 나침반"을 찾는지도 모른다. 숨어있는 책의 바깥 모임은 특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자신이 책에서 발견한 세상을 털어놓는 자리이다.

회원들에게 서울에서 추천하고 싶은 헌 책방 다섯 군데만 꼽아보라고 했다. 인연이 각별했던 탓인지 신촌의 '숨어있는 책'이 우선이다. 헌책 방은 고물상 등 중간수집상이 책을 더미로 가져와서 한꺼번에 책을 인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숨어있는 책은 주인이 직접 '북 헌팅'에 나서기 때문에 그야말로 너절한 책을 책방 안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음은 헌책방계의 '교보문고'라고 불리는 대치동의 '책창고'. 80평은 족히 되는 넓은 매장에 분야별로 다양한 책을 구비하고 있다. 대양서점도 괜찮은 헌책방 축에 든다. 특징은 깔끔한 책 정리. 책말고도 LP 음반, 민예품, 고서화 등을 진열·판매하고 있어 정감이 간다. 이밖에도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목동의 '열린책방'은 책 유통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고, 낙성대의 '흙서점'은 유별나게 모든 책을 물가 변동에 무관하게 책에 적힌 정가의 반 값에 판다.

온라인 헌책 방 가운데는 '고구마'의 인기가 단연 으뜸이다. "자료 수집량이 방대하고, 서지 내용이 체계적이어서 어떤 경우는 대학 도서관에서도 확인할 수 없는 책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는 고구마는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이 인수를 시도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숨어있는 책은 아직 체계를 갖추지 못한 소모임의 활성화가 당면 과제다. 이를 테면 관심 있는 주제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세미나 모임, 헌책 방 답사를 전문으로 하는 동아리, 또는 신간 서평을 전문으로 올리는 모임, 아니면 인라인 스케이트 타고 돌아다니기(물론 헌책 방을 순회하면 더 좋다) 동호회도 괜찮다고 한다. "그건 7월 출범할 4기 회장과 운영진의 몫입니다."

회원들은 식사를 하며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2차' 자리로 옮겨 갔다.

/글·사진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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