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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벗하니 부드러워졌죠"/이원종 前정무수석 들꽃사진작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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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벗하니 부드러워졌죠"/이원종 前정무수석 들꽃사진작가로

입력
2003.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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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값 1,850원이 없어 이렇게 소중한 자료도 못 보내고 있습니다."문민정부 시절 부통령으로 불릴 만큼 실세였던 이원종(64) 전 청와대정무수석이 퇴임이후 들꽃사진작가가 됐다는 건 지인들에게는 제법 알려진 일이다. 1997년 2월 퇴임하는 자리에서 뭘 할 지 묻는 기자들에게 무심코 "들꽃이나 찍으러 다녀볼까"했던 게 계기가 됐다. 공보처 차관시절 인연을 맺었던 사진작가 김정명씨가 그 소식을 듣고 "카메라만 메고 따라오라"며 그를 들꽃의 세계로 이끌었다. 들꽃을 앵글에 담기 위해 방방곡곡을 헤맨 지 벌써 5년이 넘었다.

그런 그가 백두산의 꽃을 담은 동영상CD를 어렵사리 제작해놓고 마음고생을 톡톡히 하고 있다. "주변 도움으로 백두산의 봄 풍경과 꽃들을 기록한 동영상을 제작하긴 했는데 배포하기가 쉽지않아요. 초·중·고교에 교육용으로 무료로 나눠줄 계획인데 배달비용이 수천만원이나 들어서…."

이번 동영상CD는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과 자연, 그리고 우리 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알리고 돕기 위해 친구들과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3년 전에 설립한 사단법인 우리누리(www.urinury.com)의 두 번째 작품이다. 백두산 야생화의 사계를 김정명씨가 8년간 10여 차례 찾아 400일 가까이 야영하며 촬영했다. 이씨가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우리누리의 첫 결실은 독도의 비경과 생태, 독도지킴이들의 삶과 애환을 담아 지난해 내놓은 사진집CD '우리 땅 독도'다.

그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과 외래종에 가린 우리 들꽃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동영상CD를 학교자료로 나눠주고 싶다고 했지만 정작 교육부 담당자는 "내용은 좋지만 후원기업의 이름이 박혀있어 곤란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나 스스로 문민정부의 중심에 있었으니 경직된 행정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궁여지책으로 사단법인의 얼마 안되는 식구들이 매달려 전국의 16,000여 학교에 일일이 편지를 보내고 있다. '등기우표를 보내주시면 식물관찰일기 <백두산의 꽃> 동영상CD를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비매품이지만 일반인에게는 다음 자료 발간을 위한 후원회원이 되면 보내주고 있다.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우리누리를 운영하기가 쉽지않습니다. 말로는 우리 것을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분들이 많지만 정작 그런 일을 하는 단체에는 인색합니다. 오히려 평범한 시민들이 적극 후원합니다."

정치인에서 들꽃사진작가로 이제는 '우리 것 지킴이'로 거듭난 그는 우리누리 일에 열중하느라 좋아하던 술까지 끊었다. 자연과 벗하기 때문인지, 불 같은 성격을 빗대 '혈죽(血竹)' 이라 불렸던 그의 혈기도 이제 찾기 힘들다. 정치를 잊은 지 오래라며 정치 얘기는 애써 피했지만 노무현 정부에 대한 안타까움은 감추지 못했다. "확실한 주류의식을 갖고 국가를 이끌어야 하는데 아직도 비주류의식과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통치의 기본전략은 포용임에도 적만 만드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는 지난해 가을학기 한양대 대학원에서 한국정치를 주제로 정치학 박사과정에 등록했다. (02)766-6432

/이동국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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