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비밀송금 의혹사건 특별검사팀이 70일 동안 수사를 하는 동안 박지원·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등 주요 소환자들 독특한 발언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강변하거나 심경을 드러냈다.가장 눈길을 끌었던 인사는 두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DJ 지키기' 충성 발언. 한 전 실장은 "한광옥이 죽어서 김 전 대통령이 온갖 수모와 암울한 정치적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내비쳤었다. 이 전 수석은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고 희생양을 자처했고, 박 전 실장은 "협상 과정에서의 모든 잘못의 책임은 내가 지겠다"며 '십자가 지기' 경쟁에 동참했다.
특히 박 전 실장은 지난 18일 서울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 직전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라는 조지훈의 시 '낙화'의 시구로 자신의 심경과 처지를 드러냈다. 그는 또 특검 조사과정에서 심야에 긴급체포되자 파견검사들과 '위로주' 명목의 폭탄주를 3잔씩 나눠 마시며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박 전 실장은 서울구치소에서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을 독파한 뒤 요즘은 '태백산맥'을 읽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원장, 이 전 수석 등 '국민의 정부' 실세들은 변호사 사무실 직원들의 수행을 받는데 그쳤지만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김재수 전 현대 구조조정추진본부장 등 현대그룹 핵심 간부들은 출두 및 조사 과정에서 늘 현대 직원 5,6명의 철통 보호를 받아 대조를 보였다. 이 때문에 특검팀 안팎에서는 "'권력보다는 돈이, 돈보다는 법이 강하다'는 우리 사회의 '진리'를 새삼 실감했다"는 농담이 오가기도 했다. 한 현대 관계자는 현대그룹에 불리한 진술을 한 또 다른 현대 관계자와의 대질신문을 받던 도중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쏘아붙여 두고두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70일 동안 취재기자들과 소환자들은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해야 했다.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은 기자들을 피해 심야에 8차선 도로를 막무가내로 횡단했고, 국정원은 용역회사 직원까지 동원해 소환되는 간부의 노출을 막으려다 결국 기자실에 공식 사과문을 보내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기자들과의 접촉을 곤란해 하는 특검팀 수사진도 마찬가지. 일부 수사관들은 기자들을 피해 지하 5층부터 15층까지 걸어 오르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이들은 또 수사 막판 계좌추적 정보 등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반면 기자들의 질문에 너무나 '성실히' 대답해 스타로 부각된 한 소환자는 "특검에 하루라도 오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며 너스레를 떨어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수사기간 내내 송두환 특검과 김종훈 특검보 등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들과 박광빈 특검보, 박충근 검사 등 검찰 출신들 사이의 '강·온 대립설'이 돌아 특검팀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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