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달러 대북 송금이 결정된 날은 남북정상회담이 최종 합의된 2000년 4월8일.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은 싱가포르에서 북한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마지막 협상을 갖고 현대의 경협사업권 대가 4억 달러와는 별도로 정부가 1억 달러의 현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박씨가 이 같은 정부의 대북 지원을 한사코 부인했던 것은 그해 5월 중순 시내 호텔 객실에서 가진 정몽헌 회장과의 비밀합의 때문이었다. 박씨는 정 회장과 단 둘이 만나 "정부가 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우니 현대가 대신 1억달러를 지급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승낙한 정 회장은 반대 급부로 현대에 대한 금융지원을 부탁했다. 박씨는 5월말 '3자회의'를 열어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 임동원 국정원장에게 현대에 대한 여신 지원 및 국정원의 송금 협조를 요청했다. 이 수석은 6월2일 박상배 산업은행 영업1본부장으로부터 "동일차주 신용공여 한도초과 문제만 해결되면 긴급대출이 가능하다"는 보고를 받고 6월3일 이근영 산은 총재와 이용근 금감위원장에게 문제 무마 및 대출 협조를 지시했다.
현대는 정 회장 지시로 현대상선 2억달러 현대건설 1억5,000만달러 현대전자 1억달러 등 총 4억5,000만달러를 6월9일 북측 계좌에 일제히 분산 송금했다. 현대건설은 싱가포르·런던 지사를 통해 각각 1억달러와 5,000만달러를 북측 10개 계좌로 분산 송금했다. 미국법인 8,000만달러, 일본법인 2,000만달러로 구성된 현대전자의 1억달러는 현대건설 런던지점 계좌를 경유, 오스트리아, 싱가포르의 북측 계좌에 들어갔다. 현대는 자금난 때문에 나머지 5,000만달러는 평양 실내체육관 건설대금과 기타 현물지원으로 대신하기로 북측과 합의했다.
임 전 원장의 지시로 국정원 회계담당자 2명은 6월9일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2,240억원과 수취인계좌를 수령했다. 이들은 국정원 직원 명의의 배서와 외환은행 관계자의 협조로 수령액을 2억달러(2,235억원)로 환전한 뒤 중국은행 마카오지점 북측 3개 계좌로 송금했다. 그러나 이중 1개 계좌(4,500만달러)에 수취인 이름이 잘못 기재되는 사고가 발생해 송금이 12일로 지연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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