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있는 한 수목원에 갔다. 나무보다는 꽃을 위주로 한 수목원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양반집, 부농의 집, 초가삼간 같은 전통 가옥과 곳곳에 지어놓은 정자였다. 더운 날씨와 구경에 지쳐, 높이 올려 지은 집의 앞뒤로 트인 대청마루에 앉으니 서늘한 집안 공기와 바람이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주었다. 수목원까지 오는 국도 변에는 아파트 단지가 계속 이어졌고, 그렇지 않은 곳은 아파트를 짓는 중이거나 택지 조성 중이었다. 지방도로 들어서니 겨우 건물에 짓눌리지 않는 산이 보이는가 싶었지만 그것도 잠시, 산 속으로 좀 더 들어가니 이번에는 소위 '펜션'이라는 것을 짓느라 야단법석들이었다.'세상의 집들'(클레르 위박 글·여명미디어)에는 주인공 꾸리가 일생에 걸쳐 사는 다양한 집들이 동화라는 그릇에 담겨 펼쳐진다. 최초의 집인 엄마의 뱃속부터 바닷가의 기둥 위에 지은 집, 수상가옥, 유목민의 이동가옥에 이어 마지막 갈 곳인 무덤까지. 동화의 내용은 사뭇 철학적이다. 뒷부분에서는 집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재미있게 보여줄뿐만 아니라 과자로 집 만들기 같은 다양한 활동으로도 유도한다.
'집짓기'(강영환 글, 홍성찬 그림·보림)는 아득한 과거의 움집에서부터 초가집, 기와집으로 발전해온 모습과 궁궐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와집 짓는 과정을 상세한 그림으로 맞배지붕, 팔작지붕, 배흘림 기둥과 같은 건축 용어를 곁들여 알려준다. 우리의 전통집을 민가와 사대부가로 나누어 설명하고 각 지방의 집도 보여준다. 용어풀이와 찾아보기까지 꼼꼼하게 곁들인 이 책은 어린이뿐 아니라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른들에게도 유익하다.
'작은집 이야기'(버지니아 리 버튼 그림, 글·시공사)는 사람들의 생활에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주는 그림책이다. 데이지꽃 송이가 흩날리고 달밤에 사과나무가 춤추는 것을 언덕 위에서 굽어보며 자연의 변화를 느끼던 작은집.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작은집의 주변은 급격하게 도시화한다. 지붕과 창문에 시커먼 먼지가 끼어 폐가가 되어버린 작은집은 밤마다 옛날에 살았던 시골을 꿈꾸고…. 그림뿐 아니라 글자까지 S자형 구도로 배치하여 매우 동적인 느낌을 준다. 미국이 급속하게 도시화하는 시기에 나온 책이므로, 지난 30여 년 비슷한 산업화 과정에서 자연과 멀어지게 된 우리의 정서와도 통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으로서 집이 예전에는 어땠으며, 오늘날 왜 획일화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은 우리 역사, 문화, 과학, 자연, 환경 등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기회가 된다.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주차장이 되다시피 한 길 위에서, 우리 생활문화를 담으면서 우리 강산에 어울리는 집에 대한 생각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대구가톨릭대 도서관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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