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라 본사 인수로 휠라 코리아 아시아 지역본부를 맡은 후 내게 주어진 1차 과제는 아시아 지역에서 휠라 재도약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시아 지사를 도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그동안 아시아 지역본부를 맡고 있던 홍콩 지사를 며칠 전 방문했다. 매니저들을 모두 불러 모아 회의를 주재하자 지사 사람들이 의아해 하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전 직원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사장은 물론 직원도 모두 회사 돌아가는 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래야 자신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일하게 된다. 틈만 나면 시간을 내서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대화의 장을 갖는 것도 이런 이유다.
언젠가 대리점주 들을 상대로 경영설명회를 열었는데 직원들이 내 자리로 연단을 준비했다. 나는 연단을 원탁으로 바꿨다. 아무래도 연단보다는 원탁에 둘러 앉아야 자연스럽게 의견을 교환하는 데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잘못을 저지른 부하 직원을 구둣발로 차는 등 직원을 호되게 다루는 권위의 리더십을 앞세워 창업신화를 만들었던 모 재벌회장의 우격다짐 경영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10년 전 신경영을 선언하고 삼성 신화를 이끌었던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에 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 앞으로 경영자는 이처럼 스스로 전문가가 되고 직원들이 따라오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최고경영자(CEO)의 권위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람직한 통제는 스스로 맡은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더구나 자유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한 패션 브랜드에서 CEO는 권위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
'가장 뛰어난 임금은 무위자연의 도로 나라를 다스린다. 때문에 백성들은 그가 있는 줄조차 모른다. 그보다 못한 임금은 법과 형으로 다스린다. 따라서 백성들은 그를 따르지만 겁을 낸다.' 노자가 밝힌 리더십이다. 경영의 귀재로 이름난 유수의 기업인들이 노자의 리더십에 심취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보편적 진리는 시간의 흐름과 동·서양의 벽을 넘어 통하는 법인가 보다.
사실 나는 직원들에게 친구 같고 선배 같은 CEO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회사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마련해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자 노력했고, 구성원 각자에게 권한을 부여했다.
남들이 보기에 우리 회사가 엉성하고 질서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회사를 찾았던 친구는 회사를 둘러보고 "이게 어디 회사냐. 대학교 서클 같은 분위기다"라며 혀를 찼다.
하지만 단순히 사장이라는 이유로 목소리를 높이고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조직은 발전이 없다. 경영자든 사원이든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밝히고 격론을 벌이는 자유로운 조직. 그래야 피가 돌기 마련이다.
물론 자유가 방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직원들 스스로 질서를 지켜야 하고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전제 조건이다. 예를 들어 출근 시간은 반드시 엄수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각을 하는 직원에게는 반드시 불이익을 줬다.
또 출근 시간 전에는 직원들이 직접 사무실 청소를 하도록 했다. 처음에 일부 직원들이 반발하기도 했지만, 자신들이 일할 공간을 직접 닦고 쓸면서 회사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라는 생각에 밀어붙였고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경영자로서 나도 엄격한 원칙을 세웠고 이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휠라 코리아 사장으로 일하기 시작한 이후 전날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셨더라도 반드시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7시30분에는 회사에 나왔다.
또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웬만한 경·조사 비용은 내 주머니에서 마련했다. 경영자 개인사와 관련된 경·조사 비용까지 회사 돈을 손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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