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연꽃 피어날 때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는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신윤복의 그림 '연당여인'이 생각났다.작은 연못에 연 잎이 웃자라 탐스럽고, 연꽃은 활짝 피어나 조용하고 아름다운 여름 한낮에 한 여인이 연못가에 앉아 있는 그림이다. 그 속으로 들어가 여인이 걸터앉은 마루의 빈자리를 조금 차지하고, 연못을 함께 바라보다가 그 여인이 조금 전까지 불다 만 생황 연주를 청해 듣고 싶은 생각이 드는 그런 그림이다. 그림은 흔히 '연당여인'으로 부르지만 좀 더 여인의 모습에 비중을 두어 '생황을 든 여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생황은 중국 신화에 인류 최초의 악기로 기록될 만큼 역사가 오래 됐고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소개돼 신라시대 동종(銅鐘)에도 부조된 악기이다. 그러나 악기 제작법이나 연주법이 쉽지 않아 누구나 쉽게 연주할 수 있는 대중적 악기가 되진 못했다. 그러다가 조선후기에 이르러 갑작스럽게 유행하기 시작해 선비들의 풍류자리에 으레 등장했다. 국가에서는 생황 제작법과 연주법을 익히기 위한 음악인을 청(淸)에 파견하고 이를 계기로 많은 양의 생황이 국내에 수입돼 사람들은 '신선의 악기'로 여겨지던 생황을 다투어 자신의 풍류생활로 끌어들였다.
생황은 풍류방에서 가야금, 거문고, 대금 옆 자리에 앉아 합주를 하거나, 대금이나 퉁소(또는 단소) 같은 악기와 조촐하게 어울렸다. 자연히 풍류객의 멋과 문화를 공유하는 여기(女妓)들도 생황을 연주하게 돼 이렇게 신윤복의 그림 속,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퇴기(退妓)'의 여가에까지 함께하게 된 것이다.
생황은 유려한 단선율의 곡선미를 자아내는 대금이나 단소 같은 관악기와 달리 하모니카처럼 두 세 음이 겹치는 소리를 낸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느린 풍류 음악을 연주할 때는 아주 천천히 '띄엄띄엄' 음을 짚어 낼 뿐이어서 '구비 구비 잘도 넘어가는 구성진 멋'을 풍기지는 못해 독주보다는 다른 관악기와 함께 연주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연당여인'이 세상일에 흥미를 잃은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속마음을 엿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띄엄띄엄' 소리를 내는 자신의 생황 연주에 유려한 관악기 선율로 화답해 줄 그 누군가가 그리운 것이다.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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