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사람들은 청동기 시대부터 한반도에서 떵떵거리며 살았는가 보다. 청동기 시대의 부와 권위의 상징인 고인돌이 이 지역에서 2000개 이상 발견돼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등록된 것을 미루어 보면.그러나 마을숲이 많은 전라도 지방에서도 유독 고창에는 마을 숲이 많지 않다. 군청 직원과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읍내에 숲정이(마을 근처에 인위적으로 조성된 숲을 가리키는 순 우리말)가 있다가 지금은 사라지고 당산(堂山)만 남았다"는 말만 한다. 고창에는 해안가에 산이 연이어 있어서 다른 지방처럼 마을 숲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짐작해 본다. 해풍과 왜구의 침입을 산이 막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과 산이 이어지더라도 곳에 따라 지형적 결함이 생길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곳을 보완하기 위해서 숲을 인위적으로 조성했다. 고창읍에서 30㎞ 정도 떨어진 심원면 화산마을에 있는 숲이 바로 그런 곳이다.
화산마을의 남쪽과 동쪽에는 선운산 줄기가, 서쪽에는 황학산 자락이 감싸고 있어 외풍을 막아주나, 북쪽은 골짜기가 바다까지 트여 있어 북풍을 다스릴 방법이 없다. 그래서 약 500년 전 선조들은 마을과 골짜기 사이에 병풍을 치듯이 팽나무, 느티나무, 개서나무, 해송을 심어서 숲을 조성했고 그 덕분에 지금 높이 10∼20m, 가슴높이 지름 40∼130㎝ 정도의 거목들이 제법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도 매우 빠르게 쇠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을에서 이 숲을 놀이터로 이용할 뿐 아니라 숲 바닥에 비닐을 깔거나 농사용 자재를 방치해 나무뿌리의 호흡을 방해해온 까닭이다. 특히 나무가 나이가 많이 들면 이런 조건은 치명적으로 작용해 숲이 더욱더 빠르게 쇠약해 진다. 더구나 하층에 다음 세대를 이어갈 나무가 없어 숲의 미래도 기대할 수 없다.
숲이 강건할 때는 바람을 막아주지만, 약할 때는 이들도 바람의 피해자가 된다. 다행히 임관(林冠)이 선운산 자락과 연결되어 있어 동물의 다양성은 풍부한 편이다. 필자가 이 숲을 찾았을 때 붉은머리오목눈이는 12마리나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고, 그 외에도 까치, 찌르레기, 박새, 멧비둘기, 청딱다구리, 진박새 등이 지저귀고 있었다. 특히 큰오색딱다구리와 쇠딱다구리는 짝짓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 풍경은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마을 숲에서는 보기 힘들어 생태계의 연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또 이런 마을 숲은 바람이 부딪치는 곳이기 때문에, 새들도 바람을 따라 날아다니다가 휴식이 필요할 때는 이런 숲을 찾을 수 있다.
만약 이런 마을 숲이 없다면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작은 새들은 얼마나 더 힘이 들것인가? 미래를 생각해서 후계목을 식재하는 등 숲을 보존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나무가 자유롭게 숨쉴 수 있도록, 숲 바닥은 숲에 돌려주고, 마을 사람들은 느티나무 옆 정자를 휴식공간으로 이용하면 숲이 잘 보존됨은 물론 우리도 숲에 기대어 쉴 수 있을 것이다.
신 준 환 임업연구원 박사 kecology@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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