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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출의 국제潮流]美-유럽 당신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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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출의 국제潮流]美-유럽 당신들의 세계

입력
2003.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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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탈리아 플로렌스에 있는 유럽연구소가 주최한 국제학술회의 참가 중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번 회의 주제는 '레닌주의의 유산과 동유럽의 민주화'였으나, 역시 대부분의 관심은 향후 미국과 유럽의 관계에 쏠려 있다.참석자들은 영국과 프랑스가 탈냉전 이후의 혼란스런 국제관계 속에서 그들의 전통적인 전략을 재현함으로써 미국과 서로 다른 관계를 설정하게 된 것을 미국과 유럽의 불편한 관계의 원인으로 보았다. 우선 영국은, 전통적으로 유럽 대륙의 세력균형자 역할을 해왔듯이, 이라크 사태에서도 미국 편에 섬으로써 유럽과 미국 모두의 관심을 이끌어 내려는 입장을 취했다. 이에 반해 프랑스는 영국과 같이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커져 가는 독일의 영향력에 대항하고자 독일 및 러시아와의 협조 체제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신종 '삼국동맹'은 약자들의 모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진 못할 것으로 학자들은 예측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이라크 전쟁으로 야기된 이 같은 관계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음과 동시에, 미국에 대해서도 유럽과의 관계 악화가 결국 미국의 고립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미국이 제3세계에 대해, '문명충돌'을 주장한 새뮤얼 헌팅턴처럼 미국식 민주주의와 도덕적 가치의 우월성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면서, 미국식 모델의 강요는 궁극적으로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몰고 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따라서 미국의 적절한 역할은 유럽을 무시하지 않고 제3세계를 '개종'시키지도 않으면서, 이미지의 형성이나 힘에 기반한 독트린의 제시 등을 통해 좋은 모범적 사례를 낳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비유적으로 말해 미국은 '훌륭한 민주주의의 향연'과 '굳건한 군사적 성채'의 역할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즉, 미국이 아무리 '민주적 제국주의'를 지향한다 해도 그것이 '제국주의'인 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대부분의 학자들이 의견을 같이했다.

이런 관점에서 9·11사태 이후 미국의 자국중심적 행위들, 예컨대 외국인에 대한 엄격한 입국심사, 환경 문제에 대한 인색함, 국제 인권재판소 및 형사재판소에 대한 소극적 태도 등은 미국의 전통적 가치인 아량과 관용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었다.

필자가 이런 토론들 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를 비롯한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논의들이 여전히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과 함께, 유럽과 미국은 서구의 문화적 유대와 가치의 친화성을 깊게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한반도와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아직도 미국과 유럽의 대화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졌다. 기본적 생계를 무시한 무계획적 경제 관계의 심화, 순화되지 않은 민족주의적 감정과 이와 연관된 군사적 신장의 가능성 등이 생각을 어지럽게 했다.

이번 회의의 성과는 우리나라가 탈식민지 국가로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예외적인 사례임을 만방에 인식시킬 필요성을 더욱 절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민주화를 통해 얻은 가치들이 내부적 스캔들로 인해 대외적으로 희석되어 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으며, 아울러 우리가 북핵 문제에 너무 매달림으로써 우리 외교의 장기적 초석이 제대로 놓여지지 않고 있다는 불안감을 내내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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