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으로 앙금이 쌓인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번엔 '농산물 전쟁'을 본격 벌일 조짐이다.농업 갈등의 두 축은 유전자 조작(GM) 식품과 농업보조금 문제. 농업에서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미국은 GM 식품 수입 금지 조치 해제와 농업보조금 폐지를 요구하면서 선제 공격에 나섰다. 반면 EU는 식품 안전성 확보와 국내 농업 보호를 내세워 방어하고 있다.
농산물 무역 쟁점은 24일 열린 세계농업장관회의와 22일 끝난 세계무역기구(WTO) 30개 주요 회원국 통산장관 회의 등을 계기로 다시 불거졌다. 이어 25일 미국과 EU 정상회담에서도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전자 조작 식품 안전성 논란
미국과 EU는 GM 식품 안전성과 기아 해결 등을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경제적 이해가 자리잡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4일 워싱턴에서 열린 생명공학 회의에서 "기아로 위협받는 아프리카를 위해 유럽 정부는 생명공학에 대한 반대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며 유럽의 GM 식품 규제를 비난했다.
앤 베너먼 미 농무장관도 이날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개막된 세계농업장관 회의에서 "생명공학은 전지구적 기아를 줄이고 영양을 향상시키며 경제를 활성화한다"며 GM 작물 옹호론을 폈다. 농업장관회의에는 다수의 개발도상국을 비롯 120여개국의 농업 장관과 전문가 등이 참여했지만 EU 국가 장관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회의장 주변에서 시위대들은 "몬산토 등 거대 농산물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개최된 회의"라고 비난했다.
EU는 GM 식품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GM 식품 규제가 보호무역주의는 아니다"라며 "유럽인들은 음식물을 골라 먹을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8개 GM 작물의 유통을 허용해온 EU는 다양한 규제를 통해 1999년 이후 신규 GM 작물의 유통과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농업보조금 폐지 논란
로버트 죌릭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3일 세계경제포럼(WEF)이 열린 요르단에서 인터뷰를 갖고 "농업보조금에 대한 EU 내부의 진통으로 세계 무역협상이 무산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EU측에 농업보조금 폐지를 촉구했다.
그러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13일 파리에서 열린 세계 청년농민회의에서 "개발도상국의 최대 농산물 수출 시장인 EU의 농업보조금을 비판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됐다"며 농업보조금 제도를 옹호했다. EU 내부에는 다소의 입장 차가 있는데, EU 국가 중에서 프랑스가 가장 강력히 농업보조금 삭감에 반대하고 있다. 농가수입 중 농업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에서 18% 가량에 불과하지만 EU에선 36%를 차지하고 있다. 양측간의 농업 쟁점은 올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리는 WTO 각료회의를 앞두고 한층 더 뜨거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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