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윙, 위∼윙∼" 초당 400번의 오싹한 날갯짓이 귓전을 맴돈다. "오매! 요 징헌 것들." 밭에서 양파 캐던 촌로의 손길이 화들짝 놀라 '짜∼악, 짝' 죄없는 제살 곳곳을 때려댄다. "요거 보란게. 금새 뽀라무겄네." 손바닥에 빨갛게 짓이겨진 물체는 바로 흡혈충 모기. 여름 한철 모기와의 한판 대결이야 흔하다 쳐도 전남 해남군 문내면 10개 부락 300여 가구의 대(對) 모기전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10년 넘게 방치된 간척지 습지가 모기 소굴이 되면서 '충해(蟲海) 전술'로 밀어붙이는 모기군단에 맞서 양파망 전투복, 칙칙이, 분무기, 연막트럭에다 헬기까지 강력한 화력으로 무장한 문내면 주민들의 사투는 한마디로 장난이 아니다."모그 때메 밭일이고 머고 못 산단게."
"시방 머한가, 냉큼 문 닫으란게!" 길손에게 냉수 한 사발 대접하던 시골 인심도 옛말. 문을 열자 주인장(신흥리)의 불호령이 이마에 꽂힌다. 사정을 설명해도 치∼익 한차례 모기 약을 뿌린 뒤에야 "아따. 모그 땜시 문 안 열라고 에어컨까지 사브렀네" 하고는 머리를 긁적인다.
소문만 무성하던 태풍이 별 탈없이 물러간 들녘엔 아낙들이 양파 캐고 마늘 다듬는 일에 열심이다. 이들 역시 예사로운 복장이 아니다. 양파 골라 채워야 할 양파 망을 머리에 뒤집어쓴 것도 모자라 지글지글 햇살 아래 우비까지 입었다.
사교리 이정순(62) 할머니가 몸빼 바지춤을 내리자 또 몸빼 바지다. "두 겹으로 입어야 맴이 놓여. 삼복 더위에도 반팔 옷은 못 입고 질긴 버선만 신응게." 김영례(66) 할머니는 한술 더 떴다. "아조 양파망으로 옷을 하나 지으믄 좋겄구만. 극성일 땐 양파망에 모기향을 빨래집게로 집어 놓기도 한단게."
주민들 아무나 붙잡고 "모기…" 하고 운을 떼면 오뉴월 저녁 모기 덤비듯 "검나(엄청 많아) 검나!" "징해(징그러워) 징해!"로 응수했다.
해가 신흥리 뒷산 옥뫼 너머로 뉘엿뉘엿 기울자 마을은 순식간에 고요 속에 잠긴다. 주민들은 집 전체를 모기장으로 도배 하다시피 한 것도 못 미더워 밤의 무법자를 피해 밖으로 난 구멍들은 죄다 틀어막고 축사에는 매캐한 모깃불을 피운다. 가로등 불빛을 보고 모여든 시커먼 모기떼를 보고 박계준(58)씨는 "곰 같다"고 했다.
'해 떨어지면 절대 나가지 마라'는 마을 철칙은 돗자리 깔아놓고 밤하늘 별 바라보며 수박 참외 까먹던 시골 풍경을 지워버렸다. 가려움을 참지 못해 급기야 온몸에 진물 나도록 긁어대는 아이들의 밤 놀이도 없다. 사정 모르고 대책 없이 밤길 나섰다간 5분도 채 안돼 벌집이 되고 만다.
"비닐하우스 일 도우러 온 막내 사우가 모기한테 옴팡 물려갔고 서울서 병원 신세졌단게"하는 장모의 측은지심부터 "누삼네는 모기가 물어 염소가 죽었다고 하드만" 하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래서 선두리 김남홍(70)씨가 내뱉는 한마디. "아따 참말로, 모그 없는 세상서 살고 싶소. 약이나 팍팍 뿌려주쇼 잉."
"멀쩡한 바다는 왜 막아 갖고…"
5년 전인가. 밭일 나가던 사교리 윤귀명(65)씨가 달려드는 모기떼에 질려 몰고 가던 트랙터를 논두렁에 쳐 박고 도망쳤다. 비슷한 경험이 줄을 잇자 임시변통으로 500만∼1,000만원 더 비싼 밀폐식 트랙터 교체가 유행이 될 정도였다.
그때만 해도 "오살(五殺)할 것들, 지들도 먹고 살라고…" 하는 심정으로 물린 자리에 침 발라 문지르면 그만이었다. 다 팔자려니 하던 순박한 마음도 모기 때문에 작파하는 밭이 생기고 밤길이 무서워지면서 짜증이 공포로 변했다. 신흥리 김영준(39) 이장은 "한때 늘어나는 모기 때문에 사람들이 떠나 마을이 없어질 뻔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도대체 어디서 그 많은 모기떼가 마을을 덮친 걸까. 의심의 눈초리는 문내면 10개 마을 뒤편에 구렁이처럼 휘도는 혈도 간척지 수로에 모아졌다.
30여년 전 한 기업이 바다를 막아 만든 혈도 간척지는 무려 180만평. 초지를 조성하고 2,000여 마리의 소 방목이 시작됐다. 목장주는 울타리 대신 폭 20여m의 넓고 깊은 수로를 파 마을들과 경계를 삼고 소들의 도주를 막았다. 주민들은 "수로 자리가 주민들에게 나눠주기로 약속한 논 자리였다"고 했다.
약속은 잊혀지고 목장은 10여년 전 부도가 났다. 새 주인은 소 사육을 100여 마리로 줄이고 방목도 중단했지만 갈대 숲이 무성한 수로는 방치돼 습지가 되고 모기의 소굴이 됐다.
김정일(48)씨는 "약속대로 논 분양을 했던지 관리라도 제대로 했다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모기가 기하급수로 늘고 피해가 눈에 띄게 됐을 땐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였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애초 바다를 메운 것부터 잘못이라고 했다. "거가 괴기들 알 까는 갯벌이었어. 멀쩡한 바다를 머하러 막았는가 몰라."
"진정서도 쓰고, 데모도 하고" 모기소탕 총력전
얼마 전 신흥마을 입구에서 데모가 벌어졌다. 간척지 목장에서 수입 소를 들여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나온 것. "인자 외국 모그까지 수입해오게." 죽어라고 맞서는 주민들 성화에 외국 소는 오도가도 못하고 죽어나갔다. 사교리에선 "이름 석자 적어 모그 사라지믄 백번도 써준다"는 심정의 서명을 모아 진정서까지 냈다고 했다.
목장측이 한 달에 2번, 면에서도 매주 수요일 방역을 하지만 이미 세를 확보한 모기를 소탕하기엔 역부족. 헬기라도 빌려 항공 방제라도 하고 싶지만 한 번에 8,000만원 드는 비용이 부담이다. 이래저래 시골 공복(公僕)의 체면도 말이 아니다. 문내면 안영철 총무계장이 불편한 심경을 피력했다. "문내면은 목포 해남 진도로 가는 교통 요지라 미래를 향해 내달려도 팍팍한디 모그 땜시 이미지 망쳐갔고 답답하요. 국가적인 특별조치법을 맹글어 습지 관리 안하믄 과태료라도 부과하든지 습지를 메워 농경지로 만들든지 해야 할텐디."
"태풍 지나간 뒤라 쪼까 조용하구만. 필시 알 까고 다시 올 거여." 한 병에 거금 10만원 짜리 모기약과 분무기를 손질하고 모기장 터진 곳을 땜질하는 문내면 주민들은 본격적인 모기와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해남=글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사진 최흥수기자
● 모기 극성 왜?
요즘 모기의 특징은 계절 불문, 청탁(淸濁) 불문이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으로 여름 한철 극성을 부리던 모기는 일년 내내 사람을 괴롭힌다. 일반적으로 더러운 물 웅덩이에 알을 낳고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모기의 서식지도 광범위해졌다.
지난해엔 평범한 반농반어 부락이던 울산 청량면 오천마을 주민들이 모기가 극성을 부리자 참다 못해 고향을 버리고 집단 이주하기도 했다.
울산 공장 단지에서 나오는 각종 산업폐수로 하천이 오염되고 10여년 전 바다를 매립한 저습지가 모기의 서식지가 된 게 화근이었다.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선 영종도와 전남 여수의 오동도, 충남 서산 A지구 간척지 등지도 모기 피해가 심한 곳이다. 공통점은 모두 바다를 메운 매립지라는 점이다. 인위적인 환경 변화와 관리 부실이 모기에게 천혜의 소굴을 제공한 셈이다. 게다가 농약과 화학비료의 과다 사용으로 잠자리나 미꾸라지 등 천적들이 사라지는 바람에 모기의 개체 수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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