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은행 노조 파업이 종료된 가운데 전교조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관련 집단연가투쟁, 운수업 노조 파업, 철도 노조 재파업 등 노동계의 연속 파업이 예고되고 있다. 다수의 국민들은 현 정부 들어 노동계의 기대심리가 커져서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파업이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이런 양상은 산별노조로의 노사관계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노동계의 전면전으로 평가된다. 조흥은행 노조와 인수·합병, 전교조와 NEIS, 철도청 노조와 공기업 민영화 문제 등을 자세히 뜯어보면 이를 알 수 있다.먼저 조흥은행 문제에 있어, 노조는 기존 단체협약 상의 구속력을 통해 현 경영진이 신한지주와의 협상에서 고용안정의 의무규정을 강화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조흥은행 노조가 민족은행이라는 미명하에 인수·합병조항에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불법쟁의를 하고, 신한지주 및 정부 그리고 조흥은행 노조가 대면하여 고용안정 협약을 체결하는 방식은 우리의 기존 노사관계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장면이다.
두 번째로 전교조와 NEIS 문제에 있어, 전교조는 학생들의 인권침해 문제를 들고 나오는데, 이는 노동조합이 시민단체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조직의 대표성 차원에서 보면 원래 시민단체는 공익을 위하여 노력하고, 노동조합은 사익 혹은 근로자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공익과 사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현상은 산별노조가 잘 구성된 유럽에서나 가능한 얘기이다.
마지막으로, 철도청 노조의 경우 정부의 공사화 방침이 노조와의 선(先)협의 약속을 어긴 것이라며 지배구조를 좀더 공기업적인 형태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가 지배구조 형태를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 또한 우리에게는 어색한 장면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악법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했던 작년의 파업과는 분명 다른 양상이다. 예컨대 병원파업과 같이 헌법에 보장된 쟁의권이 과도하게 제한된 것에 반발하는 형태의 파업이 아니라 자신들이 그리는 산별노조로 끌고 가기 위한 '선(先)쟁의-후(後)패러다임 이동'의 큰 그림 하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계의 이러한 구도변화 노력에 묵시적으로 순응해 가는 형세이다.
현 정부의 친노동계 정책은 분명 노동계에 유리한 외생변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몰두하고 힘의 논리에 집착해 왔던 우리의 노사관계에서 친노동계 정권은 원군이 아니라 오히려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노동계는 멀리 내다 보고 시스템과 논리 구축에 노력하여야 한다. 지금 솟구치고 있는 노조의 화력이 약해지는 대로 정치집단은 노동계를 희생양으로 삼거나 냉탕-열탕식 노사관계 정책을 주문할 가능성이 있다. 현 정부가 노동계를 끝까지 감싸주리라고 판단하는 것은 안일한 기대이다. 현 정부가 출범할 당시 노동운동의 미래를 걱정하는 노동계 인사들이 많았다. 왜냐하면 시스템과 논리구축을 포기한 채 힘의 전쟁에 매달릴 경우 그 뒤의 희생은 노동계가 다 안게 되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초법적인 대화·타협을 자제해야 한다. 작은 정책 하나하나가 노동현장에서 노동조합의 기대심리를 자극하거나 경영계의 박탈감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증폭될 수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근로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힘이 상대적으로 강력한 대규모 사업장 노사관계에는 깊숙하게 개입하고 힘이 미약한 영세 사업장에는 자치주의(방임주의)를 천명하는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다고 인식되어서도 안 된다.
정부는 분쟁을 처리하는 자세에 있어 일관된 원칙과 입장을 지켜야 하며, 개입하더라도 공익차원의 최소 범위에 국한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초법적인 대화와 타협은 법치주의와 자치주의를 무력화해 노사 양측으로 하여금 시스템과 논리구축보다는 목소리와 힘에 의존토록 해 결국 노동운동을 후퇴시키고 국민 여론도 부정적으로 돌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조 준 모 숭실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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