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브랜드인 '설화수'가 세계 명품 화장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급화장품으로 자리 잡았다. 1997년 처음 출시한 태평양의 설화수는 지난해 매출 2,448억원을 달성, 불과 5년 만에 20배나 급성장했다.지난해 서울, 부산 등 5대도시 화장품 소비자 1,600여명을 대상으로 한 '기초화장품 주사용 브랜드 만족도 조사'에서 설화수는 '매우 만족'평가가 44%로 외국산 명품 브랜드인 C사(38%), L사(13%)를 앞질렀다.
업계에서는 설화수의 성공을 불가사의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기연예인이나 미인 모델을 내세워 연일 TV광고를 쏟아내는 다른 화장품들과 달리 일체 방송광고를 하지 않고도 비약적인 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도 대부분 광고보다는 사용해본 주변 사용자들의 소개나 입 소문을 통해 제품을 인지하고 있다.
태평양은 90년대 중반 소비시장을 급속히 장악해가고 있던 외국 명품 화장품에 맞서기 위해 고심했고, 그 결과 한방화장품을 대항마로 내세우기로 결정했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단순한 명제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태평양은 이미 1967년부터 '인삼 중심의 한방미용법'연구를 시작, '진생삼미''삼미진'이란 브랜드를 탄생시킨 축적된 경험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경희대 한의대와 공동연구를 통해 97년 6년근 인삼과 옥죽, 작약, 연자육, 백삽, 자황 등 5가지의 생약재 추출물로 만든 한방화장품을 출시했다.
경영진이 가장 고민한 것은 브랜드명. 한국적인 고고한 아름다움을 전달할 수 있는 이미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관계자들은 한국의 아름다움과 기개가 함축된 4군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중 한국 여인상을 상징하는 '눈 속에 피는 매화'를 최종 아이템으로 선정했다. 기나긴 숙고와 토론 끝에, 혹한 속에 맑고 투명한 꽃을 피우는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설(雪)화(花)수(秀)'가 최종 브랜드명으로 결정됐다.
마케팅은 제품의 성격에 따라 다른 브랜드와 철저히 차별화했다. 화장품하면 떠오르는 방송광고를 하지 않고, 35세 이상의 상류층 중년 여성을 겨냥하는 보수적인 마케팅 방식을 선택했다. '설화수=고품격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광고는 멤버십에 의해 운영되는 고급 잡지들에만 게재하고, 판매도 백화점과 면세점, 방문으로만 제한했다. 설화수의 용기도 한국적인 감성을 담기 위해 서예가의 서체로 브랜드 로고를 디자인 하고, 한복치마와 기와, 동의보감 처방전 등 한국적인 이미지를 담았다.
고객 관리도 한국적인 감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국문화를 담은 이벤트를 열어 VIP들에 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설화수 멤버십을 고양시켰다. 지난해 말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최한 '설화수와 함께 하는 한국미전'과 매출 상위 1%의 VIP고객들에게 제공한 '남도 여행'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출시 첫해 127억원에 머물렀던 매출은 연평균 40%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 설화수 브랜드 하나가 웬만한 중견기업의 매출을 달성하고 있다. 설화수는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의 한국산업 브랜드파워(K-BPI) 조사에서 2002년과 2003년 2년 연속 여성기초화장품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 설화수의 자음생 크림은 지난해 산자부가 선정한 차세대 일류상품으로 뽑혔고, 2001년 능률협회가 주관한 대한민국 마케팅대상에서 명품상을 수상했다.
설화수 브랜드를 담당하고 있는 전진수(여·31) 부장은 "외국 화장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맹신을 떨쳐내고 설화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문화의 저력과 아름다움을 상품화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앞으로는 설화수를 세계적인 명품으로 키우는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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