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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안의 神은 결코 죽일수 없거늘…"/10년만에 장편소설 "신을 죽인 자의…" 내놓은 박상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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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안의 神은 결코 죽일수 없거늘…"/10년만에 장편소설 "신을 죽인 자의…" 내놓은 박상륭

입력
2003.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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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질투 많은 신이 느닷없이 여러 신들 앞에 나서서 이상한 소리를 했다. "나만 신이다. 다른 신은 신이 아니다." 이 말을 들은 신들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정신이 나갔구나 하고 웃고 또 웃다가 배가 아파 다 죽어버렸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가 재해석한 라그나뢰크(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의 멸망'을 나타내는 말)다. 신의 이 '웃기는' 발언은 스스로의 신격을 버린 것이었다.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면서 초인(超人)의 길을 걸었다. "신은 죽었다."신을 죽인 그는 어떻게 됐을까. 니체가 알리지 않은 차라투스트라의 부음을 박상륭(63)씨는 이렇게 밝혔다. 초인의 행로는 쓸쓸한 것이었으며, 마지막은 돌로 맞아죽는 '초인의 멸망'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초인은 죽었도다!" 그는 '칠조어론' 이후 10년 만에 펴내는 장편 '神(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하였도다'(문학동네 발행)를 두고 "니체를 바로잡은 것이며 또 잘못 읽은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캐나다에 머물던 박상륭씨는 2월 말 문우 이문구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했다. 이틀 뒤 이문구는 세상을 떠났으며, 그는 '神을 죽인…'의 말머리에 "먼저 죽지 말기를 바랐던 이들의 죽음을 가까이 보고 난 뒤, 이제는 뭔가를 정리해볼 때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목적으로 읊어진 것"이라고 적었다. 박상륭씨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해독하기 어려운 이 작품을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인류가 고차원의 문화를 이룬 것은 7,000년 남짓한 시간을 통해서다. 불가에서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탄지경(彈指頃)의 시간이다. 수억 년 전부터 인류는 있어 왔는데 하필이면 이 짧은 시간에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을까. 이 소설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는 니체의 작업처럼 기독교에 대한 서구의 오독이 놀라운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했다.

어느날 예수라는 자가 왔다. 그 자신 '인자(人子)'라고 가리키면서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다. 사람의 아들이라는 그가 "나는 신이다"라고 말하자 사람들은 수런거렸다. 해서는 안될 말을 했다는 이유로 비웃음을 샀으며 십자가에 매달렸다. 박상륭씨는 인도 자이나교에서 전해오는 인류 진화의 설화를 들려준다. "감각 기관이 하나 뿐이었던 에켄드리야로부터 오늘날 인류의 모습인 감각기관 다섯을 갖춘 판켄드리야로 오기까지 수억 년이 걸렸다. 다섯번째 기관인 내관(內官)을 통해 인간은 자기 안을 들여다보게 됐다. 무엇을 보았을까. 인간은 바깥의 우주와 똑같은 것이 자기 안에 있음을 발견했다."

예수가 짧은 생애를 통해 온몸으로 증명했던 '사람 안의 신'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은 오류라고, 바깥의 신은 죽일 수 있되 자기 안의 신은 죽일 수 없는 대상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서구 문명은 니체처럼 신을 바깥에 세워 놓아, 신의 모습을 닮으려는 노력을 통해 화려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오류를 범한 차라투스트라는 쓸쓸하게 처형당할 수밖에 없다고 박씨는 니체를 '바로잡는다'. 그러면서도 니체를 제대로 읽었다면 해설서를 쓰거나 포교에 나섰을 텐데, 니체를 '잘못 읽어' 이런 토를 달았다고 설명한다. 그 토는 여전히 소설이라 부르기에 수상하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잡소리 또는 잡설"이라고 부르며,"문학을 깨뜨리면서 동시에 문학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라는 구약(예레미야서)의 신의 예언을 떠올리게 한다. 예언은 이루어진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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