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바쁜 한국경제가 노사분규에 발목을 잡혀 신음하고 있다.경기 침체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노력마저 뒷전으로 밀린 채 '경제위기론'이 현실화하고 있는 요즘, '노사분규'라는 고질병이 기로에 선 한국경제를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목소리 큰 노동계는 힘으로 밀어붙이며 '자기 몫 찾기'에 급급하고, 재계는 투명경영과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채 위기의식만 부추기고 있다.
★관련기사 A3·B1면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정부의 대응이다. 화물연대, 철도, 조흥은행 노조의 파업 등에서 일관된 입장을 갖지 못하고 '친(親) 노동'과 '친 시장'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상황논리에 따라 '법과 원칙'이 자의적으로 해석되면서 대외 신인도를 갉아먹고 정부의 신뢰만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국민소득 1만달러 진입은 고사하고,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되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더 이상 정치논리에 휘둘릴 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시장 입장에서 국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한 노동정책을 세우고 일관된 정책을 집행하는 자세를 확립하는 게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김태기(金兌基) 단국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중심을 잡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려야 한다"며 "우리 사회가 하루 빨리 노사분규 해결에 대한 컨센서스를 이루지 못할 경우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座承喜) 원장은 노조가 망친 독일경제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한때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던 독일경제 몰락의 원인은 생산성을 무시한 높은 임금과 노동시장의 경직성에 있다"며 "산별노조와의 강력한 단체협약에 발이 묶인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고 공장들이 외국으로 이전하면서 성장동력을 잃어버렸다"고 진단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원덕(李源德) 원장은 개발독재가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뤄졌는데도 불구, 새로운 상황에 맞는 시스템이 정착되지 못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날로 증폭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민주화가 이뤄졌지만 사회적 영향력과 힘의 사용을 절제할 줄 모르는 노조, 노동자를 포용하지 못하는 권위적인 경영문화가 여전하다"며 "노·사·정이 힘을 모아 분규요인을 사전에 해소하고 분규를 예방하는 시스템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는 이미 고도성장의 신화를 접고 구조적인 저성장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지금처럼 이익집단간 충돌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낭비하며 남미형 후진국으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노사관계 해결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빨리 이뤄 침몰하는 '한국호'를 복원할 것인가. 그 해답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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