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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이부영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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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이부영의 선택

입력
2003.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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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초 몇 년 전 숨진 제정구 의원의 추모행사가 열렸다. 운동권 출신의 제 의원은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통합야당인 민주당을 깨고 국민회의를 만들어 정계에 복귀하자 노무현 대통령과 김원기 민주당고문,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 등 현정부의 핵심들, 그리고 이부영 한나라당의원 등과 함께 국민회의 참여를 거부하고 국민통합추진회의(일명 통추)를 만들어 3김정치 청산을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이들은 97년 대선에서 분열했다. 노 대통령 등은 정권교체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김대중 캠프로 갔고 제 의원과 이부영· 김부겸 의원 등은 3김정치 청산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회창 캠프를 선택했다. 그런데 제 의원의 추모식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로서 참석하는 등 갈라졌던 양 진영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화제가 됐다.97년 당시 정권교체와 3김정치 청산 중 어느 선택이 옳았느냐는 것은 주관적 판단의 문제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후 사태의 전개이다. 즉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97년 대선에서 패배해 3김정치 청산에 실패했지만 당권을 장악하면서 3김을 닮아갔다. 반면 민주당은 김대중 정부 후반기 들어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 등 실정으로 인기가 바닥을 기면서 국민경선제를 도입하는 등 3김정치의 청산을 추진해 나갔다. 이는 3김정치 청산을 위해 한나라당을 택했던 개혁파들에게 근본적인 고민을 던져줬다.

과거의 경우 한나라당이 민주당보다 여러 정책면에서 다소 보수적이지만 당내민주주의와 3김정치 청산이라는 면에서는 민주당보다 전향적이었다. 따라서 한나라당을 택한 것이 나름대로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정책적으로 보수적일 뿐 아니라 당내민주주의에서도 민주당보다 더 3김정치와 비슷해지면서 한나라당에 남아 있어야 할 명분이 약해진 것이다. 남은 명분은 김대중 정부의 실정을 심판한다는 것, 그리고 거대야당이자 집권가능성이 큰 한나라당이 수구적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 중 앞의 명분도 사라지고 말았다. 특히 이 전 총재가 정계를 떠나고 대구·경북의 민정계가 당의 주도권을 장악한 뒤 색깔론 공세 등 당의 수구화가 거세지면서 이들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국정원 인사와 관련해 한나라당이 고영구 국정원장 사퇴 권고안을 제출하자 이부영· 김부겸 의원 등이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당의 수구화를 비판하며 사퇴 권고안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빼 줄 것을 요청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게다가 당권경쟁도 한나라당이 탈바꿈할 가능성이 희박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고민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은 민주당의 신주류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신당이라는 대안이다. 특히 김부겸 의원은 이미 탈당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이부영 의원, 김근태 민주당의원, 장기표 사회민주당 대표 등 그 동안 뿔뿔이 흩어져 있던 80년대의 재야3인방이 만나 범민주개혁신당 건립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민주당의 내분이 보여주듯이 신당움직임이 첫 단추를 잘못 꿴데다가 신당은 노무현 당이라는 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제대로 개혁을 추진하지 못해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의 분당 가능성이 큰 만큼 신당을 따라 갔다가 총선에서 죽을 쑬 가능성을 우려하며 주저하는 개혁파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개혁을, 그리고 민주당의 신주류가 신당을 제대로 추진해 이들이 신당에 동참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해주느냐가 문제이다. 또 이부영 의원으로 상징되는 한나라당 개혁파들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 자기 결단을 내릴 수 있느냐는 것도 중요한 변수이다. 민주당의 신당움직임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한나라당 개혁파의 선택이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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