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이나 되는 자동차 부품을 뒤집는 작업을 직접 해보니 허리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겠더군요."1심에서 패소한 업무상 재해 사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현장 검증을 통해 작업의 강도를 직접 파악한 후 승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특별11부(정인진 부장판사)는 23일 이모(54) 씨가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다 요통을 앓게 됐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1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 했다.
이씨가 K사에서 자동차용 실린더 블록을 뒤집어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은 1999년. 100㎏에 달하는 블록을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 놓고 직접 손으로 연마하는 고된 작업이 그의 몫이었다. 그러나 1년여만에 심한 허리 통증을 느껴 진단을 받은 결과 흔히 디스크라 불리는 요추 추간판탈출증에 걸린 것을 알게됐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학적 소견은 애매했다. 이씨를 진찰한 병원 3곳은 모두 주요인은 단순한 퇴행성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했고, 2곳만 "외상이나 작업에 의해 증세 악화가 있을 수도 있다"는 단서를 붙였다.
1심에서는 결국 작업과 질병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아 이씨는 산업재해를 인정 받지 못했다. 진단서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이씨는 항소 재판부에 "현장을 한번 직접 챙겨봐 줄 것"을 부탁했고, 재판부는 이씨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결심 공판 직전인 지난 5월 K사의 작업대로 현장 검증을 나갔다.
현장검증에 나갔던 재판부는 이씨가 연마했던 실린더 블록을 들어 올리고 뒤집어 보려고 하다가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어야 했다. 실린더 블록이 얼마나 무거웠던지 주심판사는 손까지 다쳤다. 어려운 현장 검증 후 재판부는 "기계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인 자세로 무거운 실린더 블록을 끌어다 뒤집어 가며 연마하는 작업은 허리부분에 상당한 무리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추단된다"고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