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은 언제나 숙제를 해야 하는 부담의 연속이다. 집 문제부터 시작해서 전화, 의료카드, 병원, 은행, 유치원, 교통, 세금, 학교 등 무엇 하나 편하게 진행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물론 언어장벽이 가장 큰 이유다. 각종 서류가 영어와 불어로 작성돼 우리말로 의사 전달하듯이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이 된다. 편지함에 무언가 들어 있으면 '또 이번엔 무얼까?'하고 걱정부터 된다. 아파트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하면 즉각 고쳐 주기는 하는데 그걸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늘 머뭇거리게 된다.처음 이곳 몬트리올에 정착할 때도 많은 서류 작업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우리는 초기 정착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형님이 계셨다. 그럼에도 각 관공서에 전화를 하는 것은 정말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한동안 그 스트레스로 숨이 막히는 듯한 증세까지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으므로 여기저기 묻고 또 물어야 했다. 그렇게 하고도 늘 제대로 이해하고 일을 처리한 것인지 하는 불안감을 안고 산다. 이곳에서 4년 이상 산 다른 한국 사람들도 "아직도 숙제 하면서 산다"고 하는 걸 보면, 역시 남의 나라에 와서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이 모든 번거로움과 어려움이 이곳에서의 정착을 위해 필요한 것이고 캐나다 정부에서 나오는 각종 지원을 최대한 받고자 하는 데서 오는 것이므로 사실 불평할 거리는 아니다.
서류가 무섭고 말하는 것이 귀찮아서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아이들 양육비만 해도 반드시 신청할 필요는 없지만 신청하지 않으면 혜택도 없다. 의료카드, 병원 이용도 마찬가지다.
내가 정부 주관 프로그램인 COFI에 자발적으로 등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COFI는 이곳의 제1언어인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최소한의 월급과 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어 이민자들에게 무척 이로운 제도다. 몬트리올에는 중국에서 온 젊은 기술자들이 많은데 불어는 물론 영어도 서투른 중국인 중 상당수가 COFI에서 불어를 익힌 후 대학에 진학한다.
학비는 캐나다 정부로부터 대출을 받아 조달하고 생활보조금까지 받으면서 정착의 기반을 다진다. 한국 사람들이 정착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지만 영어, 불어를 한마디도 못하던 중국인들이 정착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실행하는 걸 보면 놀라울 뿐이다.
나도 COFI를 다니면서 알게 된 정보는 반드시 한번 시도해보려고 하고 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도 있으니까. 물론 번거롭고 두려운 서류와 이곳 퀘벡 사람들과의 어려운 대화, 질문들이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얻고자 하면 두드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 경 희 캐나다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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