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나들이 계획만 세워놓으면 비가 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나 혼자 편하자고 취소한다면 미리 신청을 받아 준비한 주최측에 미안해 웬만하면 비가 와도 강행을 한다.그런데 비오는 날 나들이는 참 재미있다. 우선 비가 오면 사람이 별로 없어 한적하게 설명을 잘 들을 수 있고 오붓한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지난 일요일 궁궐 나들이가 그랬다. 아침부터 비가 쏟아져 갈지 말지 망설이다가 아이들 비옷을 챙기고 우산을 들고 경복궁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경복궁에 와 있었다. 비 오는 날 경복궁 모습은 정말로 멋졌다. 새로 복원하는 곳을 빼고 아이들과 천천히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많아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감상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후원에 있는 살구나무와 앵두나무를 보고 아이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새빨간 앵두와 아직 덜 익은 살구를 보며 참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우산을 쓰고 삼삼오오 짝지어 강사의 설명을 들었는데, 사극에 등장하는 세트로써의 고궁이 아닌 선조들의 슬기가 담긴 건축물로 경복궁을 마음에 새길 수 있어 내리는 비와 천둥소리가 원망스럽지 않았다.
날아갈 듯 올라간 처마와 동궁(東宮)의 아늑한 모습과 보물로 지정된 굴뚝의 어여쁜 모습과 경회루의 아름다운 모습과 고인 듯 흐르는 연못에서 선조의 과학적인 사고를 읽을 수 있었다.
어른들은 한적한 고궁을 빗소리 들으며 운치있게 거닐 때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며 조상의 지혜를 알기 쉽게 설명도 듣고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불가사리와 해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거 속으로 간 것처럼 보였다. 비 오는 날 나들이를 즐기는 듯 장화신은 발로 웅덩이를 첨벙첨벙 거리며 뛰어다니고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은지 깔깔거렸다.
꿈틀꿈틀 거리는 지렁이와 풀잎 위를 조용히 다니는 달팽이를 발견하는 즐거움, 톡톡거리는 빗소리를 듣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감동이 되고 추억이 되리라 생각하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고궁을 나섰다.
"다음에 비오면 또 올래?"라고 딸아이에게 물으니 "비오는 날이 더 재미있어요"라고 한다. 나들이는 날씨 좋은 날에나 하는 것이니 궂은 날에는 그냥 집에 있지 하고 포기했는데 이젠 정말 비 오는 날이 기다려진다.
/홍준희·인터넷학부모공동체 '마음에 드는 학교'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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