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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왕은 마운드 1인자 꿈꿨다/홈런 새역사 쓴 이승엽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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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왕은 마운드 1인자 꿈꿨다/홈런 새역사 쓴 이승엽 스토리

입력
2003.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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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연소 홈런타자는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창조물이 아니었다. 운명 같은 인연과 적자생존의 섭리를 헤쳐 나온 진화의 산물이다.홈런타자의 기원은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승엽(27·삼성)이 동덕초등학교 4학년 때 대구지역에서 열린 멀리던지기대회에서 3위를 한 것이 시초였다. 별볼일 없는 성적이었지만 당시 야구부가 있던 중앙초등학교 관계자들에게는 이승엽의 강한 어깨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들의 손에 이끌려 중앙초등학교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이승엽의 홈런본능이 살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잘 나가는 아마 선수들이 그렇듯 경상중과 경북고를 거치면서 그는 에이스에 '4번타자'였다. 1993년 경북고 시절 청룡기대회에서 우수투수상을 받기도 한 이승엽은 94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최다홈런상과 최다타점상을 휩쓸었다.

그의 운명을 두번째 바꿔놓은 것은 수능시험이었다. 고교 졸업 이후 한양대 진학이 예정됐던 94년 말 이승엽은 어이없게도 수능시험에서 낙방했다. 아무리 운동을 잘해도 400점 만점에 40점을 넘지 못하면 대학진학을 하지 못한다는 교육부 지침을 따르지 못한 탓이었다. 이듬해 계약금 1억3,200만원, 연봉 2,000만원에 삼성 유니폼을 입을 당시만해도 이승엽은 자신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입단 당시 이승엽의 포지션은 투수였다. 그러나 이승엽의 프로필에는 등판기록이 없다. 입단 후 전지훈련과정에서 고교시절 당한 왼쪽 팔꿈치 이상이 도지면서 더 이상 투구를 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딱 1년만 하겠습니다." 타자로의 전환을 권유하는 코칭스태프를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까까머리' 이승엽이 내건 시한부 조건이었다. 그 1년의 유혹이 세계 야구사 100년의 기록을 뒤바꿔놓는 출발이 될 줄이야.

95년5월2일 당시 해태(현 기아)와의 광주 경기. 6회초 루키 이승엽은 상대 선발 이강철의 4구째 커브를 통타해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300홈런 신화의 대장정을 알리는 1호 홈런이었다.

그러나 시작은 미미했다. 안타는 곧잘 쳤지만 쉽게 담장을 넘기지 못하는 '짤순이'였다. 95년과 96년 그의 홈런 기록은 '13'과 '9'였다. 이승엽이 홈런타자로서 본격적으로 골격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97년. 이승엽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연 중 하나는 스스로 '야구스승'으로 부르는 박흥식 코치와의 만남. 박 코치는 당시 방망이를 짧게 뉘어서 잡고 끊어치는 타격을 구사하던 이승엽에게 방망이를 세워서 팔로스로와 피니시까지 스윙의 궤적을 크게 할 것을 주문했다. 활처럼 유연하고 대나무처럼 강한 이승엽의 허리를 파워스윙의 중심축으로 최대한 활용해보자는 계산이었다. 박코치의 기대대로 이승엽은 97년에 32개의 홈런 아치를 그리면서 21살의 나이에 첫 홈런왕 자리에 올랐다.

이후 이승엽의 홈런정벌(征伐)은 한국 프로야구 무대를 휩쓸고 있다. 최소 경기 30홈런, 7년 연속 30홈런, 연속 경기 최다홈런(6경기), 최연소 100,200홈런 등. 그가 내달리는 곳 마다 새로운 홈런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99년에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50홈런을 돌파하면서 최다 홈런 신기록(54개)의 금자탑도 세웠다.

이승엽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신하는 타자다. 올 시즌 95년 이후 몸에 뱄던 외다리타법을 과감하게 버렸다. 몸쪽 변화구와 바깥쪽 볼에 아킬레스건을 노출할 수 밖에 없는 외다리타법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모험이었지만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홈런의 품격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통산 268개의 홈런 중 56%(150개)를 '나홀로포'로 장식했던 이승엽은 22일 9회말 끝내기 만루홈런처럼 올 시즌에는 중요한 득점찬스에서 알토란 같은 홈런을 터뜨리고 있다. 아직 솔로홈런의 비율(30.3%·10개)이 높지만 이승엽이 홈런을 친 경기의 승률은 75.7%(25승8패)에 이른다.

이승엽의 '홈런센서'는 더욱 예민해지고 있다. 지난해 47개의 홈런 중 3개에 불과했던 초구 홈런은 올 시즌 33개 중 벌써 9개나 된다. 99년 54개의 홈런을 칠 때와 맞먹는 숫자다. 이는 홈런달인의 경지에 오른 이승엽이 이제 투수가 어떤 구질과 코스로 공격해올지 미리 알고 타석에 들어간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승엽의 영토는 이제 국내 무대가 아니다. 아시아를 넘어 메이저리그를 응시하는 이승엽의 홈런유전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하고 있다.

/김병주 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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