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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산을 옮기는 것이 愚公의 목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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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산을 옮기는 것이 愚公의 목표였나

입력
2003.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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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성도 모자라고 진위도 불분명하다는 열자(列子)지만, 탕문(湯問) 편에 실려 있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우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나이 90의 노인 우공이 사는 곳은 높은 산들로 가로막혀 있어 통행이 아주 불편했다. 마침내 산을 헐고 곧은 길을 내기로 작심했다. 아내는 말렸지만, 아들, 손자는 물론 이웃의 어린 아이까지 합세했다. 돌을 깨고 흙을 파내 키와 삼태기에 담아 발해의 끝까지 날라 버렸다. 한번 다녀오는데 철이 바뀌는 머나먼 거리였지만 중단하지 않았다.

이를 본 지혜로운 이가 나이를 생각하라며 비웃었지만, 우공은 자신이 죽더라도 자자손손 대를 이어 계속하면 언젠가는 평지가 될 것이라 했다. 산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며, 오히려 지혜로운 이의 완고함을 나무랐다. 우공의 굳은 신념과 의지에 놀란 것은 뱀을 다루는 산신(山神)이었다. 산이 없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상제(上帝)에게 고했지만, 자초지종을 듣고 감동한 상제가 산을 업어다가 멀리 옮겨놓도록 했다는 이야기다.

이 우화에 담겨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무슨 일이든 한 걸음 한 걸음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의 생각이 지혜롭다는 사람보다 오히려 현명해 하늘의 상제까지도 감동한다는 뜻인가.

아무튼 우공은 변화를 시도했다. 흔히 경제 안정, 서민생활의 안정을 입버릇처럼 되뇌지만, 서민들이 원하는 것은 안정이 아니다. 변화와 개선이다. 잘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우공은 목표가 뚜렷했다. 물론 산을 옮기는 것이 아니었다. 평탄한 길을 내는 것이 목표였다. 말하자면 물류(物流) 개선인 셈이라 할까. 18세기의 박제가도 북학의(北學議)에서 수레(車)의 개선을 가장 먼저 거론했다.

살 날이 얼마 남았는지 모르는 우공이었지만 계획은 초장기적이었다. 4∼5년이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보았다. 단기 업적에 연연하지 않고 자자손손을 배려한 장기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의 실천에는 세대 갈등이 없었다. 말리거나 비웃는 이가 있기는 했지만, 90살 노인에서부터 겨우 이를 가는 어린이까지 합심했다. 무엇보다 이 계획은 상의하달(上意下達)이 아니라 하의상달에 의해 완성됐다.

물론 지금 우공을 흉내 낸다며 삼태기를 찾는다면 정말 어리석다 할 것이다. 최신식 터널 굴착장비가 있는 세상이 아닌가. 하지만 어쩌면 환경단체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계획 자체가 무산됐을 게다.

조 영 일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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