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송금과정에서 현대그룹으로부터 150억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돈세탁 책임자로 알려진 전직 무기 거래상 김영완(50)씨가 100억원 대의 현금과 채권, 양도성예금증서(CD) 등을 강도 당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러나 경찰은 엄청난 피해규모에도 불구, 상부에 사건내용을 전혀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경찰이 김씨의 부탁을 받은 권력 핵심 인사의 압력이나 사회지도층 인사의 부탁으로 사건을 은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사건 발생 및 범인 검거
23일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씨 집에 7인조 떼강도가 들이닥쳤다. 이들은 김씨와 부인, 아들 등을 넥타이 끈으로 묶은 뒤 흉기로 위협, 서재에 보관 중이던 현금 7억원, 미화 5만달러(한화 약 6,000만 원)와 91억원 상당의 무기명채권, 수표 등 100억원 대의 금품을 빼앗아 달아났다. 김씨 신고를 받은 경찰은 사건 발생 2개월 만에 떼강도 일당 중 5명과 이들에게 김씨의 재산 관련 정보를 제공한 김씨의 전 운전기사 김모(40)씨 등을 검거했다. 그러나 범인들이 현금과 미화 등을 모두 사용한 뒤여서 채권과 수표 일부 등 59억원만 회수됐다.
조직적 은폐 의혹
경찰은 그러나 당시 사건내용을 언론에 숨기고 서울경찰청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수사 지휘·보고 계통에 있었던 경찰 관계자는 "4월 중순경 소문이 들려 확인해보니 '피해자가 외부에 알려지는 걸 극구 꺼려 보고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더 이상 살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를 맡은 문귀환 마포경찰서 수사과장은 "범인들을 다 잡은 뒤 보고하려 했으나 잔당 검거가 늦어져 보고하지 못했다" 고 말했다. 거액 도난사고 발생시 관할 경찰서는 사건 발생 경위 및 수사 내용을 지방경찰청장을 거쳐 경찰청장에까지 보고하는 것이 통례다. 이와 관련, 지난 18일 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김씨가 강도를 당한 사실을 아느냐"는 박광빈 특별검사보의 추궁에 "김씨와 김씨가 아는 언론사 간부와 함께 가진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었으며 김씨가 '크게 맞았다'고 했다"고 답했다.
김영완씨의 의혹 행보
김씨는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빼앗긴 현금 7억원은 모두 1만원권으로 6개의 대형 가방에 나눠 보관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현금을 비롯한 재산은 부모님에게 물려받았고 채권은 부동산 담보 대출을 받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범인들은 경찰 조사에서 "운전기사 김씨가 '김영완씨 집에 가면 거액의 현금이 있고 깨끗하지 않은 돈이기 때문에 절대 신고하지 못한다'고 해 범행에 가담했다"고 털어 놓았다. 경찰 관계자는 "자신을 부동산 임대업자라고 밝힌 김씨는 즉시 현금전환이 가능한 무기명채권 75억원 어치를 포함, 100억원 가까운 현금을 보관했다"며 "아무리 부자라 해도 그렇게 많은 돈을 현금 형태로 집에 보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신고 직후 명동 사채시장 일대를 돌며 직접 탐문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처음에는 채권과 무기명채권 번호를 모르겠다고 하더니 얼마 뒤 '명동 일대에서 내 채권이 나돈다는 소식이 있더라'며 김씨가 제보를 해왔다"며 "일련번호만 확인하면 회수가 가능한 채권에 대해 김씨가 회수를 서두르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의혹 증폭되는 100억원 출처
김씨는 박 전 실장의 현대 비자금 150억원 수수 여부를 밝혀줄 핵심 인사. 현재까지 김씨는 특검 수사 과정에서 현대가 박 전 실장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한 150억원의 CD를 직접 돈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김씨가 강도를 당한 돈이 현대로부터 나온 CD 150억원을 돈세탁한 뒤 현금, 채권 등의 형태로 보관하고 있던 자금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특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김씨 강도사건 수사기록을 검토했지만 그것 만으로는 (박 전 실장의 현대 비자금 수수 의혹과의) 관련성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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