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3일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하면서 판단의 기준이 '법리'(法理)였음을 유난히 강조했다. 특검수사 막판에 불거진 150억원 수수 의혹은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법률적으로도 특검의 목적인 대북송금 사건과는 별개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보충설명을 통해 "노 대통령이 고도의 법률적 해석을 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법문에 따르기 보다는 (특검법의) 입법 취지에 따라 판단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우선 이 같은 법리성을 앞세워 연장거부가 호남 민심 및 지지층의 압박, 민주당의 반대 등에 떠밀려 이뤄진 '정치적 미봉책'이라는 비판 여론을 피해가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법리성의 이면에는 정치적 이유가 개재돼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은 150억원 부분을 개인비리로 규정, 대북송금 특검과 분리시킴으로써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남북 정상회담과의 관련성을 차단했다. 이미 특검이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계획이 없다"고 밝힌 데 이어 이젠 제도적으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막을 수 있게 됐다.
또 문재인 민정수석이 국회의 입법에 의한 제2의 특검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도 "특검을 하더라도 반드시 150억원 부분에 국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개인비리와 김 전 대통령을 차단시켰을 뿐만 아니라 150억원 이외에 추가적 의혹 제기 및 수사 확대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보인 것이다. 노 대통령 뿐만 아니라 여권 전체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가능성에 민감해 하는 이유는 호남 지역 등 여론 악화가 신당에 미칠 악영향 차단 등 다분히 정치적 배경을 깔고 있다.
노 대통령이 현 단계에서 150억원 수수 의혹에 대한 수사주체로 검찰을 선호하는지, 별도의 특검을 선호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문재인 민정수석은 "검찰이 충분히 수사할 수 있으나 국회에서 특검법이 제정되면 특검이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라며 선택은 한나라당의 몫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특검법 입법과정에서 한나라당도 일사천리로 처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협상의 여지가 남아 있다. 기본적으로 노 대통령과 여권으로서는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대응 카드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놓은 셈이다. 어떤 결론을 내든 논란과 갈등이 불가피한 마당에 노 대통령이 연장 거부를 선택한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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