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나게 되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갈 길은 바쁘고 서로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지만 그렇다고 안면 몰수할 수는 없다. 그럴 때를 대비해 명함이라는 게 있다. 명함은 아주 많은 대화를 함축하고 있다. 어디 다니느냐? 직급은 뭐냐? 전화번호는? 등등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단 한 장에 요약해놓았다. 남자들은 학교에서 배우기라도 한 것처럼 헤어질 때는 전 국민이 똑같은 말을 한다.언제 소주나 한 잔 하자.
명함이 없는 사람들은 약간 곤란하다. 할 수 없이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어제 버스에서 명함이 없는 두 이십대 여성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근 5년 만에 다시 만난 이 대학교 동창들. 그들은 대명사를 잘 활용하여 난관을 돌파하고 있었다. 너 아직 거기 살지? 아니, 방배동으로 옮겼어(거기가 어딘지는 이제 말하지 않아도 된다). 영진이 결혼한 거 알지? 어, 결혼했어? 언제?(5분이 그걸로 지나간다. 그런 식으로 세 명이 더 거론된다). 드디어 화제가 떨어지자 한 명이 묻는다. 짧지만 울림이 강한 질문이었다.
너 전화번호 그대로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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