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푸스 신전의 신들은 처음부터 싸우고 있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남긴 말이다. 이 말은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수의 목소리가 공존하는 사회, 그것이 민주사회의 본질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최근 우리사회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는 시민사회 내에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조직들이 대거 출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현직 교육관리와 관계자들이 주도하는 교육공동체시민연합(교시련)이나 중도적 오피니언 그룹이 발의한 인터넷신문 업코리아(UpKorea), 그리고 일부 변호사들이 '제3의 변호사단체'를 결성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 우리 사회도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수의 목소리가 공존하고 경쟁하는 본격적인 민주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듯하다.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보면 물론 이 단체들이 표방하는 지향은 동일하지 않다. 교시련이 보수주의에 가깝다면, 업코리아는 중도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있다. 교시련은 '안티 전교조'적인 성격이 두드러지고, 업코리아는 진보 성향의 인터넷신문인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등으로부터 적잖은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제3의 변호사단체는 진보성향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및 보수성향의 '헌법을 수호하는 변호사모임'과는 다른 목소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환영할 일이다. 현대사회의 많은 사회 문제에는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진 않는다. 그 어떤 방안이라 하더라도 선험적인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거기에는 보수·중도·진보적 대안이 상호경쟁하고 있다. 특히 교육, 환경, 남녀평등 등과 같이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가치정립이 요구되는 이슈들은 다양한 대안을 놓고 활발한 토론과 민주적 경쟁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15년간의 민주화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났지만 시민사회 내에 계층적, 이념적, 세대적 균열이 커진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이런 균열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지만, 중도적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위축돼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사회적 긴장 및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통합을 중시하는 중도적 대안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으며, 바로 이 점에서 최근의 변화는 일단 바람직한 흐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새롭게 등장하는 조직들이 사회적 긴장과 갈등을 절충하는 게 아니라 '반대를 위한 반대'에 머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시민사회 내 비정부조직들이 겉으로는 이익조정을 표방하지만 이면을 보면 이익대변의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빈번해 민주적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더불어 민주화의 경험이 짧은 탓인지 우리의 시민문화가 '대화와 타협'에 익숙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또 하나의 문제는 다양한 목소리의 공존이라는 다원주의 논리가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적 강자의 논리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토론과 타협이라 하더라도 원칙이 있어야 하며, 이 원칙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진보·중도·보수적 대안의 생산적인 공존에서 공존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해 그것이 공존해야 하는가 또한 중요하다. 이 점에서 우리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형식적 다원주의라기보다는 민주적 개혁과 통합을 실현할 수 있는 실질적 다원주의라 할 수 있다.
'진리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라는 말이 있듯이 다양성과 민주적 합의는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동전의 양면이다.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하되 사회적 약자를 위한 민주적 합의를 성취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난 15년간의 민주화를 넘어서는 '성찰적 민주화'의 조건이다.
김 호 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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